[시사뉴스 김부삼 기자] ‘사초(史草) 실종’ 논란이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을 삭제했다는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여야가 책임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면서 상당한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2일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전자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등록됐다가 삭제된 흔적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통째로 넘겼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삭제한 의혹이 있다는 민주당과 노무현 재단 측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기초연금 논란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의 인사파동 등으로 여야가 대치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여기에 NLL(서해북방한계선) 대화록 삭제 주체논란까지 불거짐에 따라 정국은 더 극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사초 실종은 국기문란”이라며 “일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등 민주당을 향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에 책임론을 돌리는 등 강한 돌직구를 날리기도 했다.
최근 기초연금 후퇴 논란과 진 전 장관 ‘항명파동’ 등으로 야권의 공세를 받았던 새누리당은 다시 만난 반격의 호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것.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두 달여간에 걸친 검찰 수사가 결국 사초(史草) 실종이라는 국기문란 사건으로 결론 내려진 것에 허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며“이제는 대화록이 왜 정상적으로 이관되지 않았는지 진실 규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근거로 대화록이 언제,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실종되었는지 명명백백히 밝혀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해 주길 바란다”며“진상에 따라 책임을 물을 일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또 문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이 사초 실종 배경을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은희 원내대변인은“전대미문의 ‘사초증발’이 현실로 확인됐다”며 “참여정부 인사, 특히 대화록 열람을 주장하며 호언장담했던 문재인 의원은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도 “노무현 정부가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해 회의록을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확실해졌다”며 “사초 행방불명의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이 직접 국민 앞에 나와 자초지종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일단 신중한 입장을 내놓고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정상회담 대화록의 존재가 입증됐다고 가세하면서 검찰이 여권의 국면 전환을 돕기 위해 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한 것이라고 맞불을 놨다.
참여 정부측 인사들은 참여정부에서 대화록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결과적으로 대화록의 존재를 분명히 입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정상회담 대화록이 당시 청와대 이지원과 국정원에 모두 남겨졌음이 확인됐다”며 “더 이상 은폐니 사초실종이니 하는 주장의 근거는 없어졌다”며 “이지원에는 남아있는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에는 왜 존재하지 않는지 그 이유를 지금부터 확인하고 규명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관영 수석대변인도 “오늘 검찰 수사결과에서 분명해진 점이 있다. 바로 정상회담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에 현재 보관되어 있는 봉하 이지원 시스템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라며“더 이상 정상회담 회의록 사초폐기 운운하는 것은 사실과 전혀 동떨어진 정치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홍영표 의원도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는 있다는 것 아닌가. 봉하 이지원은 국가기록원 책임 하에 관리하고 있는 것”이라며 “사초 실종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기록원에 이관이 안 된 이유는 검찰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재단이 대화록 수사에 협조키로 하고 검찰측과 소환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기초연금 등 불리한 상황을 물타기 하려는 정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김 수석대변인은“당시 정상회담 회의록 작성 및 보관에 참여한 참여정부 주요 관계자들이 검찰의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갑작스럽게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며 “심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김현 의원도 “기초연금 문제 등 시끄러우니까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노무현 대통령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며 “다음 주부터 검찰 조사를 받기로 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데 이 시점에 검찰이 왜 이렇게 했는지 의아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문 의원측 인사도 “2008년에는 석 달이나 봉하 이지원을 뒤졌다. 그 때는 아무 문제없다고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 와서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문 의원은 이날 검찰 발표 직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용을 알아보고 입장을 밝히겠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