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추징금 1672억원을 전액 자진납부키로 결론을 내린 가운데 그 배경과 납부 방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의 3개월여에 걸친 강도높은 수사에 전 전 대통령 측이 추징금을 자진납부하는 것으로 논란이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추징금을 환수하는 절차도 남아 있다.
검찰은 기존에 압류하거나 자진납부된 재산을 선별적으로 공매를 거쳐 추징금을 전액 환수한다는 방침이지만 제값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어 다양한 환수 방안을 강구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전 전 대통령 내외가 거주하고 있는 연희동 사저는 당분간 추징금 집행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전두환, 비자금 버리고 아들·딸 구하다
전 전 대통령이 지난 16년간 버텨오다 자진 납부로 선회한 결정적인 배경에는 검찰의 전방위적인 압박이 통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이어 은닉 재산을 찾아내 압류조치를 취하는 한편,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을 줄소환하고 친인척을 체포·구속하는 등 전 전 대통령 주변에서부터 서서히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검찰의 칼날은 전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재용씨를 정면으로 겨눴고, 이어 장남 전재국씨의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삼남 전재만씨로 수사가 확대되는 시점에 전 전 대통령은 16년간 은닉했던 비자금을 추징금으로 내놓기로 결심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전 전 대통령이 과거 자신의 비위로 자녀들의 사업에까지 차질을 준 점도 일정 부분 감안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남 재국씨의 시공사와 허브빌리지, 차남 재용씨가 경영하는 비엘에셋, 삼남 재만씨의 미국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인 다나에스테이트 등은 비자금 은닉·세탁 창구로 의심 받으면서 거래가 끊기거나 매출이 감소하는 등 사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자진 납부하는 이면에는 떨어질대로 추락한 자신의 명예와 귄위를 늦게나마 회복하기 위한 생각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직 대통령이 수사선상에 올라 검찰에 끌려다니기 보단 자진 납부로 문제를 매듭짓고 자신을 향한 사회적 비난과 논란을 종식시키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추징금을 함께 선고받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미납추징금을 모두 납부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게 된 점도 전 전 대통령의 결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이같은 녹록지 않은 현실에 '백기투항'했다. 지난 7월16일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56일 만이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지시로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집행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전담팀을 조직한 지 109일 만이다.
◆추징금 납부 방법, 환수는 어떻게 되나
전 전 대통령측이 검찰에 낸 미납추징금 자진 납부 계획서에는 압류·압수된 부동산, 미술품, 주식 등을 매각하고 전 전 대통령 가족과 사돈이 추징금을 분납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전 대통령 일가로부터 압류한 재산 규모는 총 9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 자진납부 의사를 밝히면서 총 1703억원 상당의 책임재산을 확보한 상태다.
전 전 대통령 측에서 확보한 주요 재산으로는 우선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연희동 사저 정원과 이대원 화백 그림이 있고, 부인 이순자씨는 사저 본채와 개인 연금 보험이 추징금으로 환수된다.
장남 전재국씨는 연천 허브빌리지 48필지 전체 및 지상건물, 서울 서초동 시공사 사옥 3필지, 압수 미술품 554점 및 개인 소장 미술품,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부지 매매대금, 북플러스 주식 20만4000주, 합천군 소재 선산(21만평)이 해당된다.
차남 전재용씨는 오산 양산동 산 19-87 등 5필지, 서초동 시공사 사옥 1필지, 서울 이태원동 준아트빌이 추징금 환수에 쓰이고, 삼남 전재만씨는 한남동 신원플라자 빌딩과 연희동 사저 별채를 매각해 추징금으로 낸다.
장녀 전효선씨는 본인 소유의 안양시 관양동 부지를 처분하고, 재만씨의 장인 이희상 동아원 회장은 금융자산 275억원을 보태기로 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미납추징금을 최대한 환수될 수 있도록 한국자산관리공사 등과의 협의를 통해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공매를 진행하며 추징금 집행에 착수한다.
검찰은 압류 또는 자진납부한 재산의 성격과 규모를 면밀히 검토하고 환수가 가능한 재산부터 순차적으로 추징금으로 집행할 전망이다. 추징금 환수 작업을 최대한 신속하게 추진하되 쫓기듯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우선 자진납부 재산의 정확한 가액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자산관리공사 등과 집행절차를 면밀하게 협의, 최대한 추징금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중점을 둘 계획이다.
또 추징금 집행 과정에서 부동산 근저당 설정이나 과세, 공매 과정에서의 가격하락 문제점 등을 고려해 자산관리공사를 통한 공매를 진행하되 과세당국 등과의 협의를 거쳐 최대한 추징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만약 제값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거나 공매가 쉽지 않은 재산의 처분은 TF에서 별도의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검찰이 확보한 재산에서 추징금을 전액 환수하지 못할 경우 추가로 은닉재산 추적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만 이순자씨 명의의 개인연금보험(30억원상당)과 전 전 대통령 내외의 사저 본채 및 정원은 검찰의 압류 대상에 포함됐으나 전 전 대통령이 제출한 자진납부 목록에는 없어 집행 과정에서 잡음이 일 소지도 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연희동 사저에 대한 환수에 동의하고 있지만 현재 전 전 대통령 내외가 거주하고 있는 점을 들어 공매 시기를 늦춰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
검찰 관계자는“추징금 집행을 위해 공매절차를 진행할 경우 감정평가 절차, 집행의 시기와 방법 등을 면밀히 검토해 집행금액을 최대한 높일 예정”이라면서 “압류나 자진 납부 의사를 표명한 재산이 많이 있지만 일괄적으로 공매를 진행하면 가격 하락 등 우려가 있어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저의 경우에는 경호상의 문제도 있어서 다른 주요 자산을 먼저 공매 절차를 진행한 후 차후에 환가 절차를 거쳐 공매를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