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일부 당직자들이 국가기간시설 파괴와 인명 살상방안을 모의한 혐의(내란음모 등)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유신과 5공화국 이후 30여년만에 내란음모죄로 처벌되는 사례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28일 오전 이 같은 혐의로 통합진보당 홍순석(49) 경기도당 부위원장과 이상호(50) 수원진보연대 지도위원, 한동근(48) 전 수원시위원장 등 3명을 체포했다. 이는 수사기관의 권한으로 가능한 ‘긴급체포’가 아니라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은 ‘체포영장 집행’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이들의 내란음모 혐의를 일부 소명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이들은 이 의원이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만나 국가기간시설 파괴와 대규모 인명 살상방안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정원은 특히 이 의원이 지난해 총선 직후 ‘경기동부연합’ 회의에서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말한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확보, 형법상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국정원은 이날 오전 6시30분께부터 이석기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을 비롯해 경기 양주, 안양, 수원, 하남 등 통합진보당 당직자의 주거지 11곳과 사무실 7곳 등 18곳에 수사진을 보내 압수수색을 집행하고 있다.
국정원 수사진은 이날 오전 수원시 정자동 이상호 지도위원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통신·유류시설을 파괴하려 모의했다'는 내용의 범죄 혐의가 담긴 영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상호 지도위원은 지난 1월 국정원 직원의 미행사실을 알아채고 항의하다 시비가 붙어 '국정원이 민간인을 사찰했다'며 고소했고 이후 국정원 측이 맞고소하면서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국정원은 이 영장에서 '(이 고문 등이) 지난 5월 서울 모처에서 당원 13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비밀회합을 했고 경기남부지역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를 모의했다'고 적시했다.
국정원 수사진은 현장에서 이 같은 영장을 제시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이동식전자장치(UBS), 휴대전화, 차량 등에서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삭제된 전자 기록물을 분석하는 디지털포렌식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국정원은 압수수색 집행 대상자들이 압수수색에 대비해 문건을 빼돌리거나 컴퓨터 등을 삭제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색과 분석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국정원은 또 영장 집행 대상자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의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국정원은 2010년부터 관련 혐의를 잡고 오랜 기간 내사를 해 온 점으로 알려졌으며 이르면 29일께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청구될 것으로 보인다.
현역 국회의원인 이석기 의원에 대해서는 체포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수사기관이 회기 중인 현역 의원을 체포할 때는 영장을 청구한 뒤 국회동의 등의 절차를 밟게 되지만 현행범인 경우는 즉시 체포할 수 있다.
◆‘사형·무기징역 가능한’…내란죄란?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해 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 3명을 체포하면서 내란혐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형법 87조에 규정된 내란죄는 국토를 갈라놓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국헌 문란은 ‘법적인 절차 없이 법의 기능을 무력화 시키는 것’ 또는 '강압적으로 국가기관을 전복시키거나 권한행사를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란죄의 수장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게 되고 내란을 모의한 지휘부도 사형부터 징역 5년 이상의 형이 선고된다.
아울러 이같은 내란을 예비하거나 음모한 경우에도 최소 징역 3년 이상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내란에 가담하거나 폭동에 참여한 경우라도 징역 5년 이하에 처한다.
검찰이 지금까지 내란죄를 직접 적용해 기소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모두 3차례 뿐이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 시절엔 ‘인혁당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 내란 관련 혐의가 다수 적용된 바 있지만 이 역시 최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