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및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핫이슈들을 중심으로 수개월째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지만, 무소속 안철수 의원만은 점점 관심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모양새다.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이슈가 생성되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슈가 전-현 정권간의 갈등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또는 현재 정부에서 국정에 몸담았던 경험이 전혀 없는 안 의원으로서는 양당 간 다툼에 껴들 곳이 없는 것이다. 안 의원은 또, 정국을 집어삼킬 만한 거대한 이슈 소용돌이 속에서 ‘나만의 이슈’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소용돌이는 일단 피하고 보자는 계산일 수도 있지만, 여야 대치 정국이 길어지고 있어 이러다가 ‘안철수’ 이름 세 글자가 정치권에서 잊혀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국, 무소속의 한계이자 한국 근현대사 속 격동의 시대를 겪지 않은 신생 정당이 갖는 한계일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안 의원이 바람과 인물, 비전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대통령과 세력 중심인 국회의원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정치를 하려고 했다면, 홀로 제도권에 들어올 것이 아니라 세력을 먼저 구성하든가 재야에서 활동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끊임없이 목소리는 내고 있었다”…존재감이 희미해졌을 뿐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를 통해 야권의 대안세력으로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1차적 목표인 안철수 의원은 국정원 정국 속에서 나름대로 반사이익 찾기에 골몰하고 열심인 모습이다. 실제로 안 의원은 그동안 정국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틈틈이 밝혀왔다.
지난달 27일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원 국정조사와 관련해 “이미 국정조사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됐지만, 새누리당의 대화록 사전 입수 의혹까지 포함해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안 의원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주장하기도 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에 대해서는 “보기에 따라 일부 문구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상회담 이후) NLL이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며 “내용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개인명의의 성명을 발표해 민주당과 같은 7월 임시국회 개회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성명에서 “애초 정치권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민생을 챙기겠노라고, 을을 지키겠노라고 앞 다퉈 약속했지만 내일 임시국회가 마무리되면 이 숙제들은 9월 정기국회로 밀리게 된다”며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해 7월 임시국회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문제에 대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고 힘줘 말했고, 새누리당의 대선 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전 입수 의혹에 대해서는 “지난 대선 새누리당 캠프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이 어떻게 대화록을 사전에 입수할 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다”며 전과 달리 강경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여야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를 추진하자,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대통령 기록물 원본을 공방의 대상으로 삼아 공개하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의원은 “지금은 NLL 관련 발언의 진위논란에 시간과 노력을 빼앗길 때가 아니다”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30년 전으로 되돌린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단하며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의원은 이처럼 이슈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등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이슈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그의 목소리도 전과 달리 들리는 듯 마는 듯 희미한 것은 사실이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이슈가 아닌, 여야가 만들어낸 이슈에 묻어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목할 만한 것은 안 의원도 이처럼 자신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대선 당시 캠프 상황실장을 지낸 금태섭 변호사에게 공보 역할을 맡겼다는 점이다. 전과 달리, 목소리 크기가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아울러,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전국적 조직 다지기에도 소홀함이 없다. 각 지역을 돌며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어, 지역을 중심으로 ‘안철수 바람’ 몰이를 이어가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정쟁에 휘말릴 생각 없다” 기성 정당과 차별화 시도
안철수 의원 측은 굳이 정쟁의 한 복판에 휘말릴 생각이 없다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정파적 논리에 의한 정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안 의원은 오히려 지금이 기존 정치권과 철저히 차별화 할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다. 현안에 대해 할 말은 하면서도 정책 중심의 의정활동을 펼쳐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안 의원 측 관계자는 한 언론과 통화에서 “여야가 정쟁에 몰두하고 있는 자체가 안 의원에게는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거나 세력을 쌓아나갈 기회”라고 말했다. 안 의원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 또한, 최근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에서 “국민의 민생 문제나 경제민주화 등과 아무 상관도 없는데 정치권이 논란을 벌이는 것이 너무나 소모적”이라며 “거대정당 이외의 모든 국민이 소외되고 있다”고 여야 모두에 대한 양비론을 펼치기도 했다.
안 의원 역시 지난 6일 창원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정치인들이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면서 국가적 위기는 점점 더 깊어진다”며 “정치주도 세력의 교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라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여야 간 정쟁에 이골이 난 민심 등 이탈세력을 흡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안 의원은 지난 11일 인터뷰에서는 ‘NLL 국면에서 안철수가 잊혀졌다’는 지적에 “어떤 기자는 제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고 썼던데... 존재감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는다”며 “상투적인 표현일 수 있겠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옳은 일이 뭔가만 생각한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언론에서 뭐라하든 개의치 않겠다는 뜻이다.
‘국민들은 치고받는 것에 주목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도 “(4월 재보선) 선거할 때 어르신들이 당부한 게 국회 가면 싸우지 마라, 막말 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막말을 하면 비수처럼 국민들의 마음에 꽂힌다. 저는 그대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과 확실한 차별성을 두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렇게 언론과 국민적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면, 다시 주목받는 정치인이 되기 쉽지 않다는데 있다. 안 의원이 1/300 정치인으로 있는 듯 없는 듯 정치활동을 펼칠 것인지, 여야 정쟁을 넘어서는 뜨거운 이슈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인이 될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