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는 7일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고 대통령에게 불법사찰 근절을 위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가 대통령에게 권고한 것은 지난 2001년 설립 이후 처음이다
인권위는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현 공직복무관리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직권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묵인 하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의 지시로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뿐 아니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사법부 등을 불법적으로 사찰했으며 수집된 정보를 박 전 차관과 이 전 비서관 등 일명 'P-group(영포라인)' 관련자들에게 유출한 사실도 확인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4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를 결정하고 민간인 피해자 50여명, 사찰 관련자 22명, 비선 지휘자 2명,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조사했다.
인권위는 조사 과정에서 검찰 수사 자료,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모두 429건(공무원·공공기관 239건, 민간인 107건, 지자체 56건, 국회의원 16건, 기타 11건 )의 불법 사찰 사례를 파악했다.
불법 사찰의 개시 근거는 ▲박 전 차관 13건 ▲이 전 비서관 65건 ▲민정수석실 10건 ▲국가정보원 20건 ▲공직윤리지원관실 자체 인지 232건 등이었다.
박 전 차관과 이 전 비서관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장악한 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거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 각계각층 주요인사 80여명에 대한 사찰을 직접 지시했다.
민정수석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 범위가 아닌 지자체장, 지방의원, 사립학교 비리에 등에 대한 내사를 지시하거나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보고받은 해외·방첩정보 등도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이첩해 처리하게 했다.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자체적으로 정치인, 지자체장, 노동조합, 시민단체 관계자 등 110명을 광범위하게 사찰하고 그 결과를 박 전 차관과 이 전 비서관 등 비선 지휘라인에 보고했다.
인권위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임의적 행정조사 권한을 넘어서서 강제성을 띠는 과도한 권한을 행사했다고 판단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미행 ▲통화 내용 비밀녹취 ▲사무실 불법수색 ▲경찰 수사자료 무단입수 ▲차적조회시스템 임의 사용 등의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대상자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국가 기관의 감사실과 인사업무 담당자에게 압력을 가해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의 부적절한 업무수행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대통령에게 불법사찰이 근절되도록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국회의장에게는 국가기관의 감찰 및 정보 수집 행위시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입법적 조치를 취할 것을, 국무총리에게는 사찰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심상돈 인권위 조사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에게 권고한 이유에 대해“대통령이 사전에 보고를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런 일이 다른 기관에 권고해서 시정될 수 있다고 보여지지 않아 대통령이 재발 방지 대책을 확실히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고 대상이 현직 대통령인지 차기 대통령인지에 대해서는 “그런 구분은 없다. 권고는 대통령 사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대한 것”이라며 “회신이 늦어지면 (권고 이행 주체가)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 외에 추가적으로 밝혀진 내용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는 범법행위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인권위 조사는 불법이 아니면서도 정책적·법률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권고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