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부삼 기자]한나라당이 4.11 총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터져 나온 돈 봉투 파문으로 인해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친이계와 친박계간 갈등은 막장드라마를 방불케 할 만큼 서로 물고 뜯으며 공멸의 길로 빠져들고 있고, 이로 인해 당은 그야말로 공중분해 일보 직전이다.
돈 봉투 파문은 초선의 고승덕 의원에 의해 촉발됐다. 고 의원은 지난해 12월 14일 한 언론에 칼럼을 통해 전당대회에서 돈 봉투가 뿌려졌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정치권의 그저 그런 이야기쯤으로 치부됐고, 이후로도 보름이 넘도록 이슈가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고 의원이 지난 3일 종편 방송에서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칼럼에서 밝혔던 내용을 재확인했고, 이후로 돈 봉투 파문은 폭발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쇄신 논의와 맞물리면서 그냥 묻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의원은 결코 ‘폭로’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돈 봉투를 돌렸다는 대상이 친이계 핵심인 박희태 국회의장으로 드러나면서 당 안팎에서는 총선 공천을 앞두고 친이계 솎아내기를 위한 폭로 아니었겠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장 친이계는 반발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더해 친이계와 함께 재창당을 주장해왔던 쇄신파 일부 의원들도 ‘돈 봉투 사건까지 터진 마당에 이대로 비대위 차원에서 수습해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다시 재창당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또 일부 친이계는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서도 돈 봉투를 돌렸을 개연성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고 나서 파장은 일파만파 확산되기 시작했다. 한 지붕 아래, 서로 죽고 죽이는 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돈 봉투 파문, 총선을 불과 3개월여 앞두고 한나라당의 공멸을 부추기고 있다.
◆박희태 물린 친이계, 박근혜 물어뜯기
고승덕 의원은 의도치 않은, 폭로 아닌 폭로가 돼 버렸다면서 이번 사태의 배경에 정치적 노림수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어떤 의도에서 시작되었건 돈 봉투 살포 논란은 여권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히 찬스를 잡은 친박계에서는 이번 돈 봉투 사건을 두고 “2007년 대통령선거 직후 치러진 전대에서 친이계가 박희태 당대표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사”라며 친이계 전반을 겨냥했다. 당 주류로 부상한 친박계의 이 같은 공세에 친이계는 총선 공천 배제의 명분을 쌓기 위한 노림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18대 총선을 앞두고 55인 공천 학살이라는 말이 나돌았을 만큼 친이계로부터 가혹한 정치적 학대를 받았던 친박계가 보복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져만 갔다.
궁지에 몰리게 된 친이계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도 예외가 아니었다”면서 돈 봉투 파문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나선 것.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정면 겨냥한 것으로, 혼자 죽을 수 없다는 독기 품은 반격이었다.
이와 관련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 10일 한 언론과 통화에서 “2007년 경선도 다른 당내 선거와 마찬가지로 조직 동원선거였다”며 “이번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당내의 각종 선거에서 돈을 나눠주는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가 논란의 불을 지피자, 원희룡 전 최고위원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체육관 전당대회를 실시하면 전국에서 동원하기 위한 교통비와 식비 등 비용이 발생하는데, 누구에게 비용이 전가되겠느냐”면서 “대통령 후보 당내 경선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원 전 최고위원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경쟁이 치열했고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모두 동원하고 비용을 썼다”면서 “진 쪽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당내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근혜 위원장도 결코 돈 봉투 파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친이계인 홍준표 전 대표나 원희룡 전 최고위원의 이 같은 폭로는 앞서 고승덕 의원의 폭로와 비교하기 힘들만큼 더 큰 쓰나미를 몰고 올 수 있다. ‘너도 나도 한나라당은 모두 썩었다’는 자기 고백이나 다름없는 폭로이기 때문이다. 쉽게, 모두 공멸하자는 자폭정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무리수를 둔데 대해 여권에서는 ‘박희태 돈 봉투 살포 파문’으로 수세에 몰린 친이계 구주류가 궁지에 몰려 반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친이계인 장제원 의원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은 고승덕 의원의 입에 근거해 수사 의뢰해 놓고 박근혜 위원장과 관련된 일은 덮고 간다면 형평성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박 위원장과 관련한 의혹이 구체적으로 제기될 경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룰에 맞다”고 강조했다.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친이계의 ‘박근혜 끌어들이기’ 전략인 것이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도 “기왕에 이야기가 나왔으니 2007년 대선 경선 문제도 털고 가는 게 맞다”고 강경론을 펼쳤다.
◆친박, “박근혜 흔들기는 다 같이 죽자는 얘기” 발끈
친이계의 이같은 맞불 공세에 친박계는 일단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친이계로 전향한 과거 친박계의 좌장이었던 김무성 의원은 “박근혜 후보는 경선에서 조직에 1원도 내놓지 않았다”며 “우리는 돈을 아예 안 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일각의 의혹에 강하게 부인했고, 최경환 의원도 “선거법 테두리를 지키며 깨끗하게 했다”고 일축했다.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당시 박 후보는 돈 봉투를 돌릴 형편이 안 됐다”며 “MB 캠프는 자금이 풍부했지만 우리는 실비가 없어서 캠프 의원들이 사비로 각출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렸는데 무슨 돈을 뿌렸다는 것이냐”고 분개했다. 또 다른 친박계 인사는 “결국 근거 없이 박근혜 비대위를 흔들어 자신들의 정치적 공간을 마련해 보겠다는 의도 아니겠느냐”며 “용퇴론이 제기되자 반격의 포인트를 잡아보려고 하는 모양인데 다 같이 총을 쏴서 죽이자는 얘기”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돈 봉투 파문을 둘러싸고 친이계와 친박계가 이처럼 막장까지 간 모습을 보이자, 당내 일부 쇄신파 의원들은 재창당의 불가피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친이계 등의 집단 탈당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정두언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재창당이란 과제가 또 남았다”며 “막장까지 온 한나라당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몸과 마음도 다 지친다”고 푸념을 토로했고, 남경필 의원도 “당 해체와 신당 창당이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3주년 405호(1월19일자 발행) 커버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