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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청의 공포, 우리의 불안은 합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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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논란에 이어, 국정원의 이른바 '패킷 감청'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패킷 감청이란 인터넷을 통한 정보전달의 기본단위인 패킷(packet)의 복제를 통해 이메일, 메씬저, 방문 싸이트 등 감청 대상자의 인터넷 사용에 대한 광범위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감청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한다. 두어번의 정권교체가 가져다 준 민주화의 환상에 젖어 우리사회가 민주주의의 역행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심을 풀고 있다는 경고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절감하게 하는 사건이다.
민간인 사찰의 시와 비는 논외로 하자. 1990년 보안사(현 기무사)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 이후 20년이 지나도 한치도 바뀌지 않는 저들의 일관성이 놀라울 정도지만, 새로운 법률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근심과 논란거리는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에 따라 일견 적법하게 실행된 것처럼 보이는 감청의 문제이다. <한겨레21>의 보도에 따르면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 이경원씨에 대해 국정원은 2004년 1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12번의 감청기간 연장을 통해 무려 28개월에 걸쳐 인터넷 감청을 했다고 한다. 근거는 통비법 제6조에 따라 감청기간이 두 달의 범위에서 계속 연장할 수 있다는 것.
무제한적 감청 허가와 미흡한 기본권 인식
그러나 정작 감청의 근거가 되는 통비법 제5조는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의 실행을 저지하거나 범인의 체포 또는 증거의 수집이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감청을 허가할 수 있다고 그 보충적 성격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도무지 28개월 동안 감청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 실행을 저지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법원이 이처럼 거의 무제한적인 연장 허가를 하면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라도 한 것인지, 그 적법성과 정당성을 납득하기 힘들다.
이러한 극단적 예를 차치해도 근본적으로 현행 통비법과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들은 사생활의 핵심인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기에 대단히 미흡하다. 또한 거의 예외 없이 감청을 허가하고 광범위한 이메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고 있는 법원 역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최종적으로 수호해야 하는 사법의 본질적 존재근거에 대한 성찰이나 헌법적 인식이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 숨은 함정
이렇게 과도한 통신비밀 및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서 국회에는 이미 여러건의 통비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들이 계류되어 있다. 이메일 압수 요건의 강화, 영장 없는 임의적 통신자료 제공의 금지, 감청 기간의 단축 등이 개정안들의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들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감청의 최대 허용기간이나 감청 대상자에 대한 감청 통지기간의 단축 등도 향후 함께 논의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여기서 한나라당 이한성 의원이 대표발의한 통비법 개정안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청의 대상 범죄를 축소하는 등 일부 긍정적 요소가 있으나, 통신사실확인자료에 위치정보를 추가하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감청장비의 구비와 1년 이내의 범위에서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보관을 의무화하는 등 통신비밀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와 감청, 오남용을 가능하게 할 대단히 위험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 제한 입법의 원칙
법률안들의 구체적 내용을 살피고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권과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가치도 지루한 법조문들에서 구체화되지 않으면 공소한 원칙론일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의 구체적인 입법작업에 대한 주의와 관심은 방기할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복잡한 입법논의 와중에서 잊기 쉬운 몇가지, 너무도 당연한 원칙과 역사적 경험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입법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통신제한 관련 입법들은 이메일이 압수물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등의 법형식 논리의 문제를 넘어서는 헌법상의 기본가치에 대한 문제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통신의 비밀을 우리사회의 근본적 가치로 선언하고 있고, 통비법과 형사소송법은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충실히 구현해야 한다. 둘째, 헌법상의 자유를 제한하는 감청, 압수, 수색 등은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기본권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적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극히 제한적인 범죄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기본권 제한적 법률들은, 그러나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고, 가장 악랄한 감시의 피해자들은 대개 국가기관이 일방적으로 '범죄의 의심'만을 했던 우리 이웃들이었다. 감청장비는 반드시 감청에 사용되고 수집된 정보는 반드시 다른 목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원칙에 근거해 나는 몇가지 구체적인 입장에 큰 어려움 없이 동의할 수 있다. 감청의 대상 범죄는 대폭적으로 축소되어야 한다. 범죄 관련성이 특정되지 않는 통신과 이메일에 대한 무차별적 감청과 압수, 영장 없는 임의적 신원정보의 제공은 금지되어야 한다. 통신사실확인자료의 보관이 강제되어서는 안된다. 감청 사실은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그 대상자에게 통보되어야 한다.
개인의 존엄과 사회안전 함께 지키는 문명의 균형을
헌법도 법률에 따른 기본권 제한을 인정하고 있고, 그래서 통신비밀을 범죄수사의 목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반문할 수 있다. 그러한 반문은 정당하다. 그러나 범죄의 의심이 있다는 이유로 내 사생활을 국가가 통째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안위를 위해서 나의 인터넷 써핑이 실시간 감시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통신은 개인 생활의 가장 중핵을 이루는 일상 그 자체이고, 그 일상이 얼마나 별볼일 없는 것이든 부끄러운 것이든 불량한 것이든 그러면 그럴수록 더 통신비밀의 보호는 인간 존엄의 마지막 선에 맞닿아 있다. 그래서 아무리 정당한 목적과 절차를 통한 감시라 할지라도 그것은 항상 목적에 비해서는 과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적 통신에 대한 감시가 가지는 본질적인 위험성이다.
잠자리에서 국가전복 모의를 할 '의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에서 폭탄을 제조한다는 '의심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시적으로 누군가가 내 침실과 화장실을 지켜보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온갖 정당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감청을 통해 나의 비루한 일상이 노출되고 감시될 수 있다는 우리의 공포와 불안, 혐오감은 더욱 옳고 정당하다. 사회의 안전과 사적 통신의 보호는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문명사회는 마땅히 개인의 존엄을 지키면서 사회의 안전 또한 보호하는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감시의 공포의 불안,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
개인의 통신에 대한 감시는 그 가능성 자체로서 자연스러운 인간적 삶을 짓누르고 왜곡할 뿐 아니라, 불가피하게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시민의 의사표현을 자기검열하는 문제를 낳는다. 그러므로 감청의 문제는 기본권과 의사소통의 보장이라는 원칙을 준수하되, 한편으로는 범죄수사와 사회안위를 위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한수준이 어느 지점인가라는 이중적 관점에서 세심한 논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것은 법조문의 기술적 체계성이나 수사의 기능적 효율성, 통신사업자의 사업상 부담을 넘어서는 문제이며 그 구체적인 규범의 확립이 쉬울 수는 없다.
그러나 위정자와 보안전문가들이 무슨 이유를 들이대든 우리의 불안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그 불안은 정당하다. 주권자의 수임을 받은 자들에게 그 불안을 해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시민이자 주권자로서의 기본적 권리이자 의무이다. 감시의 공포와 불안을 민감하게 유지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시민의 가장 큰 의무일 것이고 작금의 상황에서 그 불안은 여전히 매우 정당하고 합헌적이다. 그러한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지, 향후의 입법과정을 '실시간 감시'하는 일은 국정원이 아닌 우리의 몫이다.

* 본문은 디지털 창비 논평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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