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영남취재본부] 영남지역 레미콘 운송노조의 파업으로 촉발된 ‘레미콘 대란’이 내달 초 수도권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민주노총이 ‘건설사 역할론’을 강조했다. 레미콘 공급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사와 지자체 협의체를 만들고 여기에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구·경북과 함께 레미콘 대란의 진원지인 부산지역의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부산 건설기계 지부(지부장 황석주)는 “건설업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에 건설현장의 레미콘 가격 및 공급권을 노사정협의체를 통해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방식을 마련해 줄 것을 부산시에 요청했다”라며 “이 협의체에 레미콘 공급업체뿐만 아니라 건설사도 반드시 참석하도록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민노총 부산 건설기계 지부에 따르면 지역에서 공사 중인 건설회사들이 레미콘 공급업체 수를 제한해 불공정 공급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급업체 제한에 이어 레미콘 공급단가도 공공조달등록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을 제시해 영세한 레미콘 업체와 조합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역 아파트 등 건설현장의 민노총 조합원들은 가격 인상과 공급업체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황석주 지부장은 “건설사와 레미콘 공급업체 간의 공급제한과 조달단가 이하로 떨어진 가격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건설사와 레미콘 업체, 운송노조 간 대타협이 필요하다”라며 "사업승인기관인 부산시도 건설공사 시작 전에 지역업체 장비 인력 자재를 함께 사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데 노력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면 레미콘 지입차주들과 회사 간 일어나는 갈등들을 풀어낼 수 있음은 물론이고 파업으로 인한 집회 소음이 줄어드는 등의 여건이 만들어진다고 황 지부장은 밝혔다. 그러면서 황석주 지부장은 레미콘 대란이 비단 민노총 조합원과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레미콘운송노동조합도 지난 23일 수도권 100여 개 레미콘 업체에 전년 대비 운임 15% 인상안을 요구했다. 운임 인상 적용 시점은 다음 달 1일부터로, 레미콘 업계가 오늘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현장이 또다시 멈춰 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노총이 협상 시점을 오늘까지로 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내달 초 건설기계 수급조절위원회를 열고 7월 31일 만료되는 ‘건설기계의 신규 등록 제한 조치’를 2년 더 연장하거나 해제할지를 결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2009년 8월 레미콘 믹서 트럭, 펌프카, 덤프트럭 등 세 종류의 영업용 건설기계에 대해 건설기계 수급 제도를 도입한 이래 지금까지 신규 등록을 허가해 준 적이 없다. 건설기계 운전자나 임대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지만, 반대급부도 존재했다.
제도 도입 이후 레미콘 공장이 200여 개 늘어나는 동안 레미콘 믹서 트럭의 수는 그대로였다. 그만큼 레미콘 차주들의 권한이 강해졌고, 최근 3년 동안 운임 인상을 조건으로 파업과 운송 대란이 반복됐다. 그러나 올해는 건설기계의 신규 등록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노조가 레미콘 운송에 쓰이는 콘크리트 믹서 트럭까지 포함된 건설기계 수급조절과 관련한 시너지를 노린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황석주 지부장은 건설업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콘크리트 믹서 트럭은 국토교통부의 건설기계 수급조절에 묶인 몇 안 되는 기종”이라며 “수급조절을 지속시키려는 노총으로선 다른 기종과 연계한 수급조절 관철 전선을 두껍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노총 부산 건설기계 지부 황석주 지부장은 “공공재인 건설업을 노조의 이권으로 활용하는 일은 절대 없다”라며 “그와 같은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사정 협의체를 통한 해결에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한다”라며 건설사들의 적극적 참여를 재차 촉구했다.
한국 레미콘 공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제도 도입 이후 12년이나 이어진 신규 차량 등록 제한으로 레미콘 운송업계에는 ‘카르텔’이 생겼다. 레미콘 단가가 10.5% 오르는 동안 운임은 무려 68.4%나 올랐다”라면서 “차량 노후화 등을 고려해서라도 반드시 올해는 신규 등록을 허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레미콘 공급업체 관계자는 “신규 등록이 허가되면 10%대 운임 인상이 어렵다는 점을 노조가 의식한 것 같아 우리가 제시한 5∼8% 인상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라며 “민노총 황석주 지부장의 제안처럼 공공재인 건설현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와 건설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도 황석주 지부장이 제안한 노사정 협의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건자회 관계자는 “레미콘 업계가 운송노조의 인상안을 수용해도 문제다. 7년 만에 시멘트 가격이 5.1% 인상된 가운데 두 자릿수 운임 인상까지 겹치면, 레미콘 사들의 레미콘 단가 인상 요구가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노사정의 대타협 없는 해결은 불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대구지역 파업 과정에서 애초 5% 인상안을 제시했던 건자회는 이후 7%까지 올렸지만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 건자회 측은 “최후 협상 결렬에 따라 대구는 광역시 중 최초로 협정가 제외지역으로 결정됐다. 대구는 회원사별로 레미콘 사와 단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라며, “만에 하나 대구 사태가 수도권으로 번질 때 그에 대한 파장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권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황석주 지부장의 제안처럼 건설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부분 건설현장이 철근 수급 대란으로 공정 진행률이 더딘 점을 고려하면 레미콘 운송노조의 파업은 단순한 악재가 넘어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공공재인 건설업의 회생을 위한 건설사들의 결단을 촉구했다.
결국, 해답은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와 상생을 위한 노사의 해법 찾기 만이 레미콘 대란을 잠재울 수 있기에 민노총 황석주 지부장의 제안에 건설사들의 어떤 결정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