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된 각종 보도가 연일 터져나오면서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방송가도 예외는 아니다. 채널에 대한 호감도는 시청률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JTBC와 TV조선이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까지 남다른 위상을 드러내고 있는 데 비해 KBS·MBC·SBS 등 지상파는 시청률이 하락하거나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JTBC·TV조선 이슈 장악…시청률 급상승
JTBC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관련된 각종 메가톤급 특종을 연달아 터뜨리며 이슈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뉴스룸'은 최순실씨가 독일로 떠나면서 사무실에 두고간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서 입수한 대통령 연설문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씨가 무려 44개에 달하는 '드레스덴 연설문'을 포함한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에 받아 보고 이를 수정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 보도는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시청률은 수직 상승했다. 이날 방송은 시청률 4.283%(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했다. 다음 날인 25일 방송 역시 최순실과 관련된 후속 보도를 취재하며 무려 2배에 가까운 8.08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JTBC 창사 이래 시사보도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이다. 특히 20~30대 시청자들의 비중이 3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뉴스룸'의 시청률은 1%대 후반에서 2% 초반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더 큰 놀라움을 자아낸다.
TV조선도 단독 보도를 연달아 쏟아내며 존재감을 뽐냈다. TV조선 '뉴스쇼 판'은 최순실씨와의 돌발 인터뷰 영상과 최씨가 '대통령의 순방일정표'를 받아 박근혜 대통령이 입을 옷을 기획하고 고르는 등의 장면, 윤전추 제2부속실 행정관 등에게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담긴 영상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후에도 최씨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에 개입한 정황, 최씨가 부동산 취득과 딸의 대학입시에서 정부기관 보고서를 이용한 정황 등의 단독 보도를 이어갔다. 또 박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대국민 사과문을 우병우 민정수석이 작성했고, 최순실씨가 대포폰 4개를 사용해 청와대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등의 최씨와 관련된 의혹을 집중 쏟아냈다. 그 결과 평균 1%대 시청률을 보이던 '뉴스쇼 판'은 26일 2.408%, 27일 2.076%를 기록하며 반등을 일궈냈다.
무너진 지상파 자존심
구성원들 "참담하다" 한목소리
반면 지상파는 대중의 관심에서 다소 빗겨간 모습이다. KBS·MBC·SBS 3사의 시청률은 조금씩 하락했다. 25일 기준 MBC '뉴스데스크'는 4.8%, SBS '8뉴스'는 4.2%를 기록했다. KBS '뉴스9'은 평소와 비슷한 수치인 17.4%를 기록했다. 특히 MBC와 SBS는 '뉴스룸'에 추월당하는 굴욕 아닌 굴욕을 맛보게 됐다. 지상파 메인뉴스 시간대가 JTBC와 동시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상파 뉴스 시청자의 상당수가 JTBC로 옮겨갔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상파의 이같은 시청률 하락세는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렇다 할 보도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뉴스룸'과 '뉴스쇼 판'이 최씨와 관련된 기사를 적극적으로 보도하던 것과 달리, 지상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씨를 둘러싼 의혹이 하나씩 드러나는 과정에서 지상파가 여전히 '권력 눈치보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실상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상파 내부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사의 소극적인 보도에 대한 비판과 보도책임자의 자성과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방송사마다 쏟아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달 26일 성명을 내고 "언론사로서, 공영방송으로서 그리고 한 때 가장 신뢰받고 영향력이 있는 뉴스를 만들었다는 KBS의 구성원으로서 이 희대의 사건 앞에서 KBS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로 떨어졌음을 직접 우리의 두 눈과 귀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이어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종편이었는데! 이젠 우리가, KBS의 수백 명 기자들이 '오늘은 종편 뉴스에 무엇이 나올까?' 긴장하며 기다리고, 베끼고, 쫓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지난달 25일 성명에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데, 우리만의 취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미 나온 의혹들을 정리하는 시늉만 보일 뿐"이라며 "더 늦기 전에 공영방송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MBC본부는 9월20일부터 10월19일까지 뉴스데스크의 관련 보도사항을 정리하며 "최순실이 누구인지는 단 한 차례도 설명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사측은 내부 특별취재팀 구성 요구조차 묵살하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며 "희대의 국정농단 사건 취재와 보도에 있어 그토록 얕잡아보던 종편을 손가락 빨며 바라보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이처럼 과거 뉴스 이슈 선점과 집중 취재를 선보였던 지상파가 잇따른 특종 보도를 뒤쫓아 가는 현실에 내부 구성원들은 자괴감에 빠진 모습이다. 이들은 TF(특별취재팀)를 구성하자는 내부의 요구에도 사측이 '권력 눈치보기' 때문에 이를 묵살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지상파 3사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에 대한 전 사회적 분노가 대통령 '하야'와 '탄핵' 요구로 분출되자 뒤늦게 '특별취재팀'을 구성하고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관련 집중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물타기' 보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앞으로도 내부의 반발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언론노조 KBS본부는 김인영 보도본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KBS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김인영 보도본부장이 "보도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뜻이 있느냐"는 노조의 질문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KBS본부는 김 보도본부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노조가 최순실 보도를 침묵하다가 JTBC와 TV조선 등 종편에 보도 주도권을 뺏긴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공영방송사 보도본부장이 '최순실 낙종'과 관련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KBS본부는 김인영 보도본부장의 사퇴 이행과 함께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에게도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KBS본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이 취재와 보도를 통해 명확하게 밝혀질 때까지 청와대의 방송장악 보도통제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책이 마련될 때까지 행동하겠다"며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으로 바로 서는 날까지 줄기차게 싸워 나가겠다"고 결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