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최순실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쏟아지면서 결국 권력형 비리로 귀결됐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 두 재단이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 등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들의 '돈줄'로 활용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올해 여름 문화·스포츠 재단인 미르와 K스포츠 설립 및 인사 관련 논란에서 출발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은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에 각각 출범했다. 두 재단은 각각 삼성 현대차 SK LG 등 16개 주요 그룹(486억원), 19개 그룹(288억원)으로부터 총 774억원을 단기간 내 출연받아 설립된 것으로 알려지며 정치권과 언론을 중심으로 각종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최씨가 사실상 실제 운영자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기업들은 최씨가 대통령의 비선(秘線) 조직의 핵심인물인 것을 알고 거금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대 재계 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적극 개입해 기업들에게 800억원이 넘는 돈을 강제 모금했다는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정권 실세 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
'비선의 돈줄' 미르·K스포츠재단
각종 논란에 휩싸인 미르·K스포츠재단은 최씨가 사실상 실제 소유자로 볼 수 있다. 최씨가 차은택 전 문화창조융합본부장 등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는 등 각종 인사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사업을 수주할 수 있게 힘을 써줬다는 의혹도 나온 상태다. 그 과정에서 최씨에게 뇌물이 흘러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미르·K스포츠재단은 최씨와의 개인적 사업과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최씨는 본인 개인회사와 사업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자금과 생활비 등을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독일에 세운 페이퍼컴퍼니 '비덱'이 대표적이다. 비덱은 K스포츠재단이 추진한 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 지원 사업 관련 80억원투자 사업 주관사라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다.
또한 최씨가 만든 '더블루K'도 K스포츠재단 자금을 독일로 빼돌리기 위해 만들어진 페이퍼컴퍼니다. 비덱과 '더블루 K'가 사실상 같은 회사이고, 최씨의 '쌍둥이 회사'라는 점에서 K스포츠재단과 '최씨의 회사들'과의 유착 관계를 의심케 한다. 즉 K스포츠재단이 더블루K에 일감을 몰아주고, 여기서 받은 돈을 독일의 더블루K로 보낸 뒤 이를 현지의 비덱으로 자금 세탁하려 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특히 K스포츠재단 직원 2명이 '더블루 K'에 출퇴근하며 일했고, 이들은 모두 최 씨의 측근이라는 주장도 제기돼 K스포츠재단이 사실상 더블루K의 사업 들러리 역할을 했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위기의 전경련', 거세지는 해체 압박
최순실씨의 '재단 사유화' 의혹은 정경유착 논란으로 확산되면서 전경련의 해체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전경련이 회원사들에 대한 보호와 권익 향상 등을 통한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설립목적에 충실하기 보다는 정권 입맛에 맞춘 행보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전경련은 최근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로 곤욕을 치른바 있다. 나아가 지난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 모금을 비롯해 2011년 기업별 로비대상 정치인 할당 문건 사건, 2012년 국회의원 자녀대상 캠프 추진 등의 논란을 빚으며 수차례 정경유착의 연결고리라는 오명을 받아왔다.
전경련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서 또다시 정권의 요구에 앞장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것은 이전의 과오를 결코 반성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특히 허창수 회장을 비롯한 전경련 회장단은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음에도 전경련 관련 사안에 책임있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피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어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사회시민단체와 재계 일각에서는 전경련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차라리 조직을 해체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와 관련 최근 주요 6개 그룹사에게 '전경련 탈퇴 의향'에 대해 공개질의를 하는 등 전경련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압박강도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자금모금과 관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전경련 해체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는 지금껏 전경련 스스로 모금활동을 벌인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재계, '최순실 게이트'로 패닉
재계는 비선실세로 국정농단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최씨 관련 검찰 수사가 조만간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되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검찰이 최근 전경련에 대한 압수수색,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 이어 SK그룹 임원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주요그룹들은 마침내 관련기업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최순실씨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수십억원씩의 출연금을 낸 주요 그룹들은 수사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입장정리에 분주한 상태다. 이들 그룹은 일단 출연금 집행은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뤄졌고 검찰조사가 진행되면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향후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가 확산될 경우 기업 활동에 차질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자칫 반기업정서가 확산될까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각 기업들이 글로벌 경제 침체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분위기 쇄신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 기업들과 최씨의 관련설이 난무하고 있다"며 "'설'이 언제 기사화될지 모르고, 이에 따른 기업 이미지 훼손도 우려돼 난처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 주요기업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 대기업의 '맞장구'가 없었다면 전경련이 과연 그런 일들을 진행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파문의 방패 노릇을 한 탓에 가려졌을 뿐 사실상 이들 기업도 논란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재계 일각에선 출연 기업들이 자체 이사회 규정까지 어겨가며 거액을 출자하거나 약정 출연금을 충당하기 위해 계열사로부터 '쪼개기 모금'까지 동원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향후 검찰수사에 따라 파장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과거의 후진국형 정경유착 관행을 떨쳐버리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며 "정치적 압박에 의해 불가피하게 출연금을 낸 정황은 이해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은 물론 전경련도 정경유착 고리를 차단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