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종근 기자]조세와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험이 30% 넘게 뛰는 동안 가계의 순수 소비지출은 10% 증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소득 증가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세금 등이 늘어났지만, 소비 지출은 이에 못미치고 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가계가 줄일 수 없는 것만 빼고는 가급적 씀씀이를 줄였다는 이야기이고, 그 만큼 살림은 더욱 빠듯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3일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0년 67만4000원이던 비소비지출은 2015년 81만원으로 약 20% 증가했다. 비소비지출은 세금과 건강보험료 등 사회보험료, 이자비용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같은 기간 363만원이던 가계소득은 437만원으로 역시 20% 가량 늘었다.
비소비지출의 항목별로 보면 ▲경상조세(10만5000원→13만8500원) ▲비경상조세(1만1600원→1만7000원) ▲연금(9만5000원→12만5000원) ▲사회보험(9만원→12만9000원) ▲이자비용(7만8000원→8만4000원) ▲가구간이전지출(20만4000원→21만2000원) ▲비영리단체로이전(9만원→10만500원) 등 모든 분야에서 상승세를 나타냈다.
5년 동안 경상조세는 31.5% 상승했고 사회보험은 42%나 뛴 것이다. 20% 오른 가계소득보다 더 큰 폭으로 올랐다는 얘기다.
앞으로 이 같은 비소비지출 증가율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저성장·고령화 시대를 맞아 정부의 복지 지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증세없는 복지'를 고집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복지예산을 충당하기 위한 증세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전체 가계지출은 296만원에서 337만원으로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비지출이 228만원에서 256만원으로 12% 증가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계의 흑자율은 22.7%(67만원)에서 28.1%(100만원)로 5.4%포인트 높아졌다. 평균소비성향은 77.3%에서 71.9%로 5.4%포인트 낮아졌다.
국가에서 거둬들이는 조세와 준조세성격의 각종 사회보험은 소득 증가에 따라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가계의 의지에 따라 소비를 억제할 수 있는 항목은 가능하면 자제했다는 뜻이 된다.
이 같은 소비 패턴 역시 고령화 사회,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 주거·수도·광열(20.52%), 교통 (18.62%) 등 꼭 지출해야 할 소비의 상승폭은 전체 소비지출의 상승폭을 넘어서지만 교육에 쓰는 돈은 오히려 5년 전보다 감소했다. 교육비는 2010년 29만원에서 2015년 28만원으로 4.5% 감소해 12개 소비지출항목 중 유일하게 줄었다.
앞으로 살 날은 많이 남아있지만 노후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중장년층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래 소비를 대비하다보니 현재의 소비를 크게 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시기에 은퇴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도 가계 저축율 상승에 한 몫 한다.
미래 소득이 낮아질 것을 대비한 소비성향 저하는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이 낸 보고서 '소비성향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10년 이상 소비성향 하락이 지속됐다. 성장률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일본 국민들이 미래 기대소득 증가율을 낮추고 소비를 조정했기 때문이다.
고가영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인들이 합리적 판단에 의해 소비를 줄이는 현상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소비 위축을 가져와 성장과 소득을 떨어뜨리고 경기 침체를 더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 선임연구원은 "여가관광, 헬스케어 등 내수서비스 육성으로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소비성향을 높이는 한편 장기적으로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늘리고 단기적으로 안전망을 구축해 노후불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