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61)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014브라질월드컵에 나선 홍명보호의 성공을 기원하며 값진 조언을 전했다.
차 감독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멋진 축구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이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실리적인 운영으로 지지 않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명보(45)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 진출에 도전한다.
경기도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소집 훈련을 실시한 대표팀은 지난 28일 열린 튀니지와의 평가전을 통해 '베스트 멤버'를 출격시켰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공·수 양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대표팀은 0-1로 패했다.
안방에서 치른 출정식에서 졌으니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전지훈련지인 미국 마이애미로 떠난 대표팀을 향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무대를 밟은 경험이 있는 차 감독은 평가전 결과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대표팀 선수들에게 믿음과 응원을 보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차 감독은 "튀지지전을 보니 한국 선수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경기 결과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다음 평가전에서는 선수들의 움직임·팀의 전술적인 움직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홍명보호는 역대 월드컵대표팀 가운데 평균 연령(25.9세)이 가장 낮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조직력이 떨어질 것이란 비판은 자제해야 한다. 이번 대표팀에는 역대 가장 많은 유럽파 선수들이 포함돼 있다. 충분한 큰 무대 경험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라에 큰 사고도 있었고 대표팀 선발과정에서 논란도 있었다. 이전 월드컵대표팀과는 달리 홍명보호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브라질로 떠났다"며 "대표팀과 관련된 여러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은 비판보다는 응원을 보내줘야 할 때다. 그래야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신들이 지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나라가 슬픔에 빠져있는 지금 축구는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표팀을 위해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차 감독은 "홍명보호에는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가 많지 않다. 월드컵이라는 특별한 대회에서 침착함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단점은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 홍 감독의 전술적 운영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한국은 8강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선 멋진 경기를 펼치는 것보단 안정적인 경기를 하는 것·실리적으로 지지 않는 경기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각 팀에 대한 맞춤형 전술을 미리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점인 수비 불안에 대해선 지난 튀니지전 실점 장면을 복기하며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한국은 튀니지전에서 전반 43분 주하이에르 다우아디(클럽 아프리칸)에게 드리블 돌파를 허용하며 결승골을 내줬다.
차 감독은 "대표팀은 실점 과정에서 3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우선 중앙 미드필더인 한국영이 역습을 나오는 상대를 센터서클 부근에서 1차적으로 막아야 했지만 공을 빼앗기 위해 과도하게 전진하며 너무 쉽게 돌파를 허용했다"며 "1차 저지선이 무너진 뒤 포백 수비도 문제를 드러냈다. 측면 수비는 오프사이드 트랩을 이용하지 않은 채 최전방 공격수 1명에 얽매여 있었고 센터백 역시 안정적으로 수비라인을 지키려고 하기보단 몸의 중심을 너무 앞쪽으로 기울였다. 상대의 화려한 개인기 길을 내준 뒤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을 지켜봐야만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수비수들은 오프사이드 트랩을 활용해 상대 최전방 공격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중앙 미드필더들도 공을 빼앗기 위해 도전을 해야 할 지 후방 수비진이 포지션을 재배치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줘야 할 지를 순간적으로 잘 판단해야 한다"며 "이러한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 수비와 중앙 미드필더는 간격 조절이 중요하다. 우리가 역습 상황을 맞았을 때 일단 중앙 미드필더와 포백 수비가 촘촘하게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 사이 공간이 좁기 때문에 상대가 쉽사리 돌파를 시도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표팀 주축 공격수들은 거의 해외파들이다. 차 감독은 이 중에서도 손흥민(레버쿠젠)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차 감독은 "나도 독일에서 현역 생활을 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한 시즌에 두 자릿수 이상의 골을 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근데 손흥민은 그 어린 나이에 벌써 엄청난 활약을 하고 있다"며 "빠른 돌파 후 득점을 하는 손흥민의 플레이는 일품이다. 그가 지니고 있는 재능들을 조합해 보면 이번 월드컵을 포함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프로축구 수원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차 감독은 이후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팬들이 그의 그라운드 복귀를 염원하고 있지만 차 감독은 재야에 남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차 감독은 "현재 한국 축구계에는 홍명보 감독을 비롯해 황선홍·하석주·최용수 등 젊고 뛰어난 지도자들이 정말 많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다시 감독으로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이 맞다"며 "나는 감독이 아닌 해설위원으로서 국민들에게 축구의 재미를 전해드리는 일을 하고 싶다. 그동안 축구를 통해 내가 받은 사랑을 좋은 해설을 통해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