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에 쌓여버린 마음의 거리, 그리고 다시 마주하는 용기
어느 저녁, 마트에서 마주친 아주머니 두 분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우, 남편이 또 잔소리를 해서 그냥 밖으로 나왔지 뭐야."
"나도. 요즘은 숨소리도 거슬리더라고."
둘은 허탈한 듯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어쩐지 서늘한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그 대화를 들은 한 젊은 여성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정말 여자는 나이 들수록 남편이 싫어지나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단순히 "좋다 vs 싫다"를 나누는 이분법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 안에는 말하지 못한 수십 년의 시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감정, 그리고 관계 안에서 외면당한 수많은 '나'들이 숨겨져 있다.
사랑했던 그 사람,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처음부터 남편이 싫었던 사람은 없다.
사랑했고, 함께 미래를 꿈꿨고, 두 손 꼭 잡고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로맨스 드라마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경제적 책임이 무겁게 어깨를 누르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후순위로 밀어두는 날들이 이어진다.
처음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웃고 울던 아내도,
점점 그의 무심함에 익숙해지고,
"이제는 말해봤자 뭐해"라는 체념이 입을 다물게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아내는 '여자'가 아닌 '엄마'로, '살림꾼'으로, '버팀목'으로 살아간다.
그 사이 남편은 ‘같이 사는 사람’이 되었고, 어느새 그의 숨소리, 밥 씹는 소리마저 신경이 쓰이는 날이 온다.
싫어진 걸까? 아니면... 외로운 걸까?
'싫다'는 말 뒤에 숨은 말, "나 좀 바라봐줘요"
많은 여성들이 말한다.
"남편이 싫어요. 말이 안 통해요. 눈도 안 마주쳐요."
하지만 그 말들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이런 말이 숨어 있다.
“나 좀 이해해줘요. 나도 힘들어요. 당신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요.”
여성이 나이 들수록 남편을 싫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묻어두었던 감정들이 무뎌지고,
소통이 끊기고, 감정의 공백이 커지면서
이해보다 오해가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여성은 ‘남편이 싫어졌다’기보다는,
“이 사람이 나를 몰라주는구나”라는 깊은 실망감과 외로움에 지쳐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들도 모른다. '왜 미움받는지'
한편, 많은 남편들은 정말 모른다. 왜 아내가 예전 같지 않은지. 왜 대화가 줄었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는 말이 진심이다.
그들은 애초에 '감정'이라는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였다.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라고 배운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감정적으로 지쳐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쌓이는 건 오해뿐이고,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한 채 서로의 거리는 멀어진다.
하지만 때때로 남편들도 혼잣말처럼 말한다.
"요즘은 아내랑 말이 안 통해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요?"
이 말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마음이 떠난 건 아닐까?"
그리고 늦었지만 용기 내 묻고 싶은 진심이 담겨 있다.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요?"
관계는,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은 시작보다 ‘지켜내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관계는 언제든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아주 작은 말 한마디로 시작할 수 있다.
"요즘 힘들지 않았어?"
"내가 너무 무심했지?"
"당신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
그 말 한마디가, 닫혀 있던 마음을 조금씩 다시 열게 한다.
처음처럼 뜨거운 사랑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서로에게 따뜻한 사람, 편안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인생 후반의 가장 큰 축복 아닐까.
마무리하며
그래서 다시 묻는다.
여자는 나이 들수록 남편이 싫어질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그저 너무 오래 감정을 미뤄둔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무뎌지고, 말하지 않아서 멀어졌을 뿐이다.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
그 사람과 다시 진심을 나눌 준비가 되었다면,
관계는 언제든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 그 마음을 한 번 꺼내보는 건 어떨까.
그 한 걸음이 당신의 남은 삶을 따뜻하게 만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