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서울의 북악산을 애플 빌딩이 가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뉴저지에서 풍치훼손 가능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LG전자 미주신사옥을 둘러싸고 미국의 환경보호단체와 주민들이 반대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시민단체 '프로텍트 팰리세이즈 연대'는 9일 뉴욕주재 한국특파원들을 비롯한 한국언론에 칼럼과 동영상 등을 보내오는 등 팰리세이즈 절벽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보호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LG전자가 뉴저지 잉글우드클립스에 짓고 있는 신사옥은 높이 44m의 장방형 빌딩으로 법정소송까지 가는 등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와 LG전자측이 3년째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환경단체는 계획대로 완공될 경우 1개층이 숲위로 튀어나와 천혜의 팰리세이즈 절벽 풍치를 망가뜨리게 된다고 비판하는 반면 LG측은 그같은 예상은 과장됐으며 거의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단체는 "신사옥 부지가 27에이커(약 3만4000평)에 달하는만큼 LG가 수평으로 넓게 지어도 얼마든지 필요한 사무실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층수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LG는 여러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최종 승인된 친환경빌딩이라면서 현 싯점에서 설계변경하는 것은 예산과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이날 '프로텍트 팰리세이즈 연대'는 LG전자 신사옥 건립 전후를 가상한 자극적인 이미지들을 첨부한 가운데 뉴저지 와이코프자치구의 브라이언 스캔런(Brian D. Scanlan) 의원의 한글 번역칼럼 '서울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보내와 눈길을 끌었다.
뉴욕타임스 등 주류 언론의 기고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최근 서울방문에서 아름다운 북악산과 그 아래 자리한 경복궁에 매료됐다"고 말하고 "만일 애플이나 GE같은 미국의 대기업이 서울의 멋진 북악산을 가로막는 빌딩을 짓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팰리세이즈 절벽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숲과 절벽으로 이뤄진 멋진 자연경관이자 뉴저지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LG전자의 고층 사옥 건립계획은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시민들의 갈등과 마찰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캔런 의원은 "미국소비자들은 소중한 자연경관을 파괴한 LG 상표 제품을 다시는 구매하지 않게 될 것이고 한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 배신감으로 인해 심각한 반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LG전자의 고층 사옥은 한국 대기업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흉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로텍트 팰리세이즈 연대'가 제작한 '팰리세이즈의 위기(The Perils to the Palisades)'라는 8분48초짜리 동영상의 수위는 더욱 높다. 2억년전 탄생한 팰리세이즈 절벽은 1억8300만년 생성된 그랜드캐년과 록키산맥보다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국가적 보물'이라는 것이다.
조지워싱턴 브리지 북쪽으로 약 10㎞ 이어지는 팰리세이즈 절벽은 500피트 높이의 단단한 암석층으로 이뤄졌으며 이곳에 살던 델라웨어 원주민들이 '나무같은 절벽'이라는 뜻의 '위큰'(Wee’awken)으로 부르기도 했다.
허드슨강과 어우러진 빼어난 풍치를 세계의 수도 뉴욕 맨해튼 인근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이 약간의 훼손도 용납하지 않는 이유는 팰리세이즈 절벽이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보호된 자연경관이기 때문이다.
19세기 광물채굴업자들의 개발로 조지워싱턴 브리지 남단의 팰리세이즈 절벽 일부가 파괴되는 등 위기에 처했을 때 뉴욕주지사였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팰리세이즈 절벽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치가 될 것"이라며 팰리세이즈 지킴이로 나섰다. 또 당대 최고의 부자 존 D 록펠러는 1933년에 현재 가치 3억달러의 사재를 털어 팰리세이즈 절벽 사유지를 사들여 주정부에 기부, 개발을 원천봉쇄했다.
이곳에 위치한 유니레버와 CNBC같은 기업 빌딩들은 35피트(10.7m)의 고도제한에 따라 3층 이상 올리지 못했고 덕분에 뉴욕쪽에서 바라본 팰리세이즈는 사계절 절벽과 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LG전자가 높이 44m의 8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잉글우드클립스 시의회에서 고도제한을 150피트(45.7m)로 대폭 완화하는 조례안이 통과된 덕분이다. 이어 지난해 8월 버겐카운티 고등법원이 환경단체의 소송에 대해 건물 신축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11월부터 착공에 들어갔다.
프로텍트 팰리세이즈 연대는 LG전자 신사옥이 완공될 경우, 선례가 되어 다른 대형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들은 "정파를 초월한 네 사람의 전직 주지사들과 현 주지사, 환경단체, 평생 이런 일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선량한 지역 주민과 미국 시민들이 LG전자의 고층 신사옥 건립에 반대하고 있다"면서 "LG전자의 경영진이 리더십을 발휘해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갈 줄 아는 훌륭한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보여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