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시대, 우리는 왜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지 못하는가.
지난 2월 25일 오후 4시 30분경, 오이도에서 진접역으로 향하는 지하철 4호선 안은 여느 때보다 고단한 공기로 가득했다. 출근 시간대가 아닌데도 노인석 주변은 빈틈없이 붐볐고, 연로한 분들이 서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였다.
어느 정류장에서인가 붐비는 노인석의 중간 한 자리가 나자마자 한 어르신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평화는 채 두 정류장을 가기도 전에 깨졌다. “아 XX, 좀 저리로 가라고!” 먼저 앉아 있던 노인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함과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좁은 자리에 가방까지 메고 끼어 앉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 앉은 이는 “나도 앉을 만하니 앉은 것 아니오”라며 항변했지만, 쏟아지는 폭언 앞에 결국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X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자리를 뜬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험악해진 분위기 탓에 어느 누구도 그 빈자리에 선뜻 앉지 못했다. 분노의 에너지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오지라퍼 계열인 필자는 객기 부리듯 용기를 냈다.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자, 화를 내던 노인은 필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이내 “앉으쇼”한다. 필자가 앉자 90세에 가까워 보이는 옆좌석의 노인이 갑자기 말을 건다. “내가 서울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아. 아직 한참 더 가야 합니다. 서울역 다가오면 제가 알려드릴게요”라며 비교적 친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금 전까지 세상을 다 집어삼킬 듯 욕설을 퍼붓던 노인이 필자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푹푹 짜르더니 갑자기 존댓말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만약 재산이 20억 있는데 신용불량자가 되면 나라에서 다 빼앗아 가겠지요?”
생뚱맞은 질문이었지만 필자는 성심껏 답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금융기관 등에서 동결하고 회수하겠지요."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산 분쟁, 민사재판과 공판의 차이,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사생활과 양평 땅 이야기까지 주제는 종횡무진 이어졌다. 20~30분간 이어진 이 기묘한 대화에서 필자가 한 일은 그저 적절한 리액션과 공감뿐이었다. “아, 그래요? 처음 듣는 얘기네요” “잘 모르지만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날 선 칼날 같던 노인의 목소리는 차츰 차분해졌고,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노인들의 얼굴에는 비난 대신 미소가 번졌다. 차가운 얼음장이었던 지하철 칸이 순식간에 훈훈한 대화의 장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겪으며 필자는 30여 년 전의 한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필자는 어떤 연유로 조폭 같은 이들에게 볼모로 잡혀 신체적 위해를 당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극도의 공포가 엄습했지만, 필자는 사즉생(死卽生)의 마음으로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채 대화를 시도했다.
“당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 일이 나중에 당신들에게 큰 후회로 남을 수 있다” 며 차분하게 설득했다. 결국 경찰차가 두 대나 출동했다가 “알아서 잘 해결하라”며 돌아갈 정도로 상황은 평화롭게 종료되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 ‘어마무시한 상황(선혈이 낭자한 현장)’에서의 무사한 탈출(?)은 결국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는 리액션과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대 사회는 갈등의 전시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역 노인석에서부터 정치적 견해 차이까지, 우리는 나와 조금이라도 결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하고 분노를 투사한다. 하지만 이번 지하철에서의 경험과 30년 전의 필자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상대방이 아무리 험악하게 상황을 이끌고 가도, 우리가 조금이라도 다정하게 다가가 그의 언행에 공감해주고 적절한 리액션으로 화를 누그러뜨린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분노는 대개 ‘내 존재를 알아달라’는 외침의 비정상적인 발현이다. 욕설을 내뱉던 노인이 바랐던 것은 어쩌면 좁은 자리의 여유가 아니라, 자신의 복잡한 속사정을 들어줄 단 한 사람의 귀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먼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묻는 여유,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맞장구쳐주는 배려를 가질 때, 우리 사회의 수많은 ‘폭탄’들은 ‘대화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 적절한 공감과 리액션은 가장 강렬한 분노마저 녹여버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4호선 지하철에서 만난 그 노인의 “잘 가소”라는 미소 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이유다.
글쓴이=시사뉴스 박성태 대기자

배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행정학 박사
전 파이낸셜뉴스 편집국 국장
전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