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벽두, 우리는 단순히 '기술이 발전한 시대'를 넘어 범용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이 인간의 지능적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과 논리적 추론마저 알고리즘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이 냉정한 기술 지향적 사회에서,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은 어떤 경제적·사회적 함의를 지니는가?
단순히 떡국을 먹고 세배를 하는 관습적 행위를 넘어, AGI 시대에 설날이 갖는 '인간 존재론적 가치'와 '새로운 경제적 모멘텀'을 짚어보고자 한다.
알고리즘이 대체할 수 없는 '정서적 자본(Emotional Capital)'의 확인
AG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최적의 해답을 내놓지만,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가족'이라는 공동체 내의 미묘한 정서적 유대와 맥락적 공감까지 복제하지는 못한다. 설날은 파편화된 개인들이 다시금 혈연과 지연이라는 근원적 네트워크로 복귀하는 시간이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설날은 극도로 효율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결핍되기 쉬운 '신뢰 자본'을 재충전하는 기간이다. 모든 것이 가상화(Virtualization)되는 시대에, 직접 대면하여 온기를 나누는 행위는 인적 네트워크의 회복력을 높이며, 이는 곧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보이지 않는 경제적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하이테크 시대의 '하이 터치(High Touch)' 소비 경제
AGI가 주도하는 자동화 경제는 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들은 '가장 인간적인 것'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를 '하이 터치' 경제라 부른다.
프리미엄화: 설 명절에 소비되는 지역 특산물, 수공예품, 전통주는 AGI가 찍어낼 수 없는 '이야기'와 '장인정신'을 담고 있다.
경제의 확장: 명절 이동은 단순한 물리적 이동을 넘어, 고향의 로컬 콘텐츠를 소비하고 재발견하는 '로컬리즘(Localism)' 경제를 활성화한다.
AGI 시대의 경제는 규격화된 상품보다, 설날처럼 특정한 시공간이 주는 '맥락적 경험'에 지갑을 연다. 명절 기간 발생하는 대규모의 자산 이동과 소비 진작은 AGI가 예측하기 힘든 인간적 욕망과 향수가 결합된 독특한 경제 현상이다.
노동의 종말과 '관계적 가치'의 부상
AGI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수록, 인류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직면한다. 이제 노동은 생존의 수단을 넘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결국 인간 관계의 심화다.
설날은 우리에게 '노동하는 인간(Homo Faber)'에서 '놀이하고 교류하는 인간(Homo Ludens & Homo Communicans)'으로의 전환을 연습하게 한다. 가족 구성원 간의 대화, 조상을 기리는 예법 등은 효율성이라는 잣대로는 설명될 수 없는 가치들이다. AGI 시대의 사회적 해법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설날이 보여주는 것처럼 '함께 함'의 가치를 어떻게 제도화하고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 가장 오래된 미래로서의 '설’
AGI는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삶의 이유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우리 민족이 지켜온 설날은 디지털 황무지 속에서 인간성이 메마르지 않도록 적시는 정서적 오아시스이자, 초연결 시대에 진정한 '연결'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2026년의 설은 기술의 진보를 찬양하는 동시에, 그 기술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AGI 시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는 결국 '사람'이며, 설날은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가장 오래된 미래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신안산대학교 기술사관학교장 소방안전관리과 특임교수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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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일 수소 및 연료전지 전문 행정사
신안산대학교 친환경에너지 기술사관학교장(특임교수, 기계공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