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원유 가격이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메이저 정유회사들이 전례 없는 규모로 신규투자를 줄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일(현지시간) 저유가로 경영난에 봉착한 정유회사들이 신규투자 축소와 자산 매각, 감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르웨이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리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에 따르면 원유 및 가스에 대한 전 세계 투자 규모는 지난해 5950억 달러(약 703조원)에서 올해 5220억 달러(약 617조 원)로 22%나 떨어졌다.
지난달 30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36.60달러, 북해산 브렌트유는 36.4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현재 30달러 대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는 유가는 앞으로 20달러 선까지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저유가로 타격을 입은 정유회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셰브론과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정유회사들은 올해 예산을 25% 삭감했다. 영국의 로열 더치 셸은 올해 예산을 50억 달러 삭감했다. 리스타드 에너지사의 부회장인 뵤나르 톤하우겐(Bjoernar Tonhaugen)은 “1986년 원유 값이 하락하기 시작한 이래 2년 연속 투자가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의 부채 및 자기자본 비율은 20% 정도로 다른 업계에 비해 낮은 편이다. 업계 소식통들에 따르면 정유회사들이 기존의 배당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차입금에 의지해야 한다. 셸은 1945년 이후 배당금을 깎지 않았다. 경영진들로서는 이런 전통을 깨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정유회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정유회사의 주주들은 세계적인 투자회사이거나 연기금들로 구성돼 있다. 정유회사 입장에서는 만일 배당금을 줄일 경우 이들 큰손들이 이탈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는 것이다.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배당금만은 줄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2015년 정유회사들이 결정한 주요 프로젝트들은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셸은 멕시코만 애퍼매톡스(미국 버지니아 주 중부도시) 유전을 개발한다. 노르웨이 국영 석유회사인 스타토일은 북해의 요한 스베르드룹(Johan Sverdrup) 유전에 290억 달러(약 34조 3000억 원)를 투자했다.
2016년 정유회사들의 투자처로 떠오르는 곳을 살펴보면 BP가 멕시코만 ‘매드 독 페이즈 2(Mad Dog Phase 2)’에 100억 달러(약 11조8300억 원)를 투자한다. 셰브론은 카자흐스탄 텡기즈 유전을 개발하고 있다. 정유회사들은 기존 투자처에도 프로젝트 규모를 줄이거나 값싼 장비를 투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있다.
시추설비 정보 전문업체인 리그존(Rigzone)에 따르면 정유회사들이 유정탑 하나를 빌리는 데 드는 용선료는 지난 2014년 40만5000달러(약 4억7900만 원)에서 2015년 33만2000달러(약 3억9200만 원)로 떨어졌다. 정유업체들이 빌리는 유정탑의 수가 줄면서 임대료도 대폭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불황일수록) 배짱이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투자를 삭감하면 원유 가격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할 때 득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