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철규 기자] “이대로 가면 남북한의 언어는 이질적인 언어가 될 것입니다.”
남북의 언어와 인명, 지명에 대한 통일된 표기법이 시급하다고 러시아의 전 북한대사가 지적했다.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에 따르면 4일 모스크바 국립언어대학에서 열린 학술토론회에서 발레리 수히닌 전 북한주재 러시아대사는 “언어적 이질감이 더 깊어지기전에 남북한의 국어학자들이 빨리 통일된 국어표기법을 개발해 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2009-2012년 대사직을 포함해서 22년간 북한에서 근무하고 5년간 남한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수히닌 전 대사는 이날 발표자로 나와 남한과 북한의 한글표기법의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수히닌 전 대사는 “내가 아는 북한의 외교관중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북한에서 이모씨라고 표기하는데 남한에서 굳이 ‘리’모씨로 표기하더라. 북한에는 이씨도 있고 리씨도 있다”고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오랜 분단으로 남북간의 왕래가 단절되면서 언어적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같은 문제가 남북통일에도 장애요인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한국문학의 러시아어 번역 현안: 한국어 고유명사의 바른 러시아어 표기’라는 주제로 총 12명의 발표자가 각각의 주제 발표를 했다.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과 모스크바국립대학, 모스크바국제관계대학, 러시아국립인문대학, 러시아국립사범대학, 상뜨-뻬쩨르부르그 국립대학,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및 잡지사 ‘김’ 등 한국학과 한국어 전문가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다.
한인사회에서는 김원일 민주평통 모스크바협의회장과 김영웅 극동연구소 한국학센터소장 등이 초청됐고 관련학과 교수진, 연구원, 학생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김원일 회장은 인사말에서 에카테리나 포홀코바 학과장(러시아 한국학교수협의회장)을 비롯한 주최측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고 “뜻깊은 학술회의가 열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학분야가 해야 할 사업이 많은 연구분야인만큼 러시아학자들의 많은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첫번째 발표자인 레프 콘체비치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교수는 러시아에서 한국어 인명이나 지명에 대한 통일된 표기법이 확실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러시아 한국학자들이 더 올바른 한국어표기방법에 대해서 논의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콘체비치 교수는 한국학 연구에만 60여년을 전념하고 있는 원로학자로 러시아 한국문학연구계의 태두로 불리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K-pop을 필두로 한국 노래 및 드라마,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올해부터 시작된 무비자 협정으로 러시아 방문 한국인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에 맞춰 아직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한국어 고유명사의 러시아어 표기법 통일 문제와 정확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한국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문제를 다루는 학술 토론회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에카테리나 포홀코바 교수는 “러시아 언론, 관광부, 블로그,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및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에 관해 다루고 있지만 러시아어 표기법이 통일되어 있지 않아 큰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문학작품 번역 기관과 공동으로 통일표준표기법 제정을 의논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원일 회장은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사항은 한국어의 지명 인명을 러시아어로 표기하는 어려움이었다. 또한 남북한의 표기외에 고려인의 발음 표기 문제도 제기되는 등 실제적으로 한국어의 분화는 남한 북한 고려인 세가지로 나눠지고 있다. 만일 중국 조선족까지 포함한다면 4개언어로 분화과정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5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행사는 학술 토론회 외에도 모스크바국립대학 아시아아프리카연구소에서 이승우 소설가, 천명관 소설가 등 한국 작가들과 만남의 시간도 가졌다. 모스크바에는 지난 2009년 한국문화번역원의 초대로 은희경 작가, 신경숙 작가, 이택수 시인이 다녀갔고 2010년에는 한러수교 20주년 기념행사에 오수연 작가와 송찬호 시인이 참석한 바 있다.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한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 한국어학과에는 예까쩨리나 뽀홀꼬바 교수 외 2명의 러시아인 교수와 노지윤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학년별로 1학년이 11명, 2학년이 9명, 3학년이 8명, 4학년이 4명, 5학년이 8명 등 소수 정예로 운영되고 있으며 한국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대학측에 따르면 졸업생들은 여러 한국 기업들에 취직하거나 한국어 연구를 계속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깊게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