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의 아트&컬처】 국제갤러리에서 만나는 걸출한 세계적인 두 여성 작가, 김윤신 & 강서경

2024.04.22 13:46:09

김윤신, 1세대 여성조각가의 실험과 도전정신 담은 ‘회고전’
강서경, 리움 이후 선보이는 입체적인 봄의 산수화 펼쳐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두 여성작가가 같은 시기, 같은 갤러리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고 있다. 
국제갤러리가 4월 28일까지 개인전을 마련한 1세대 여성조각가 김윤신(89)과 
리움미술관에서 지난해 하반기 대규모 개인전을 마친 강서경(47)이다. 42년의 연배 차이가 있으나, 
나이와 무관하게 열린 세계관은 같다. 넓은 확장성을 보이는 두 작가의 작품세계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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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 여성조각가 김윤신…‘회고전’서 삶을 살아가는 의미 보여

 

먼저 국제갤러리 본점  K1, K2에서 열리고 있는 김윤신의 개인전 《Kim Yun Shin》을 보자. 1세대 여성조각가인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에 본거지를 두고 30여년간 활동해오다 지난해 귀국전을 치렀다. 그리고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제60회 국제미술전 본전시(4.20~11.24)에 초청받은 작가다.  


백세시대 작가의 힘을 보여주는 그는, 회고전을 통해 입체와 색면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조형 언어의 힘으로 ‘삶을 살아가는 작업’의 의미를 보여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김윤신은 나무 및 석재 조각, 석판화, 회화를 아우르며 고유의 예술세계를 일구어왔다.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5년 뒤인 1964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 조각과 석판화를 수학했다. 69년 귀국해 70년대 홍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여류조각가회 결성을 주도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 한국에서는 얻을 수 없는 아름드리 나무들에 반해 80년대 중반부터 남미로 옮겨가 곳곳을 돌며 창작활동을 해온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다. 


“낯선 이국땅에서 예술가로 살 건가, 고국에서 편안하게 교수로 살 건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예술가로 남을 것이다 했어요.”
이번 전시는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그곳에서 40년을 뿌리내렸던 그가 한국으로 다시 뿌리내리기 위한 첫번째 전시이자 국제갤러리와의 첫 프로젝트이다. 그는 지난해 남서울미술관 회고전에서 우뚝 선 남미산 나무조형물과 명징한 색조의 회화조각 등을 내보여 미술판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또 최근(3.14~4.6)에는 뉴욕갤러리 전시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1970년대부터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의 철학에 기반한 목조각 연작과 꾸준히 지속해온 회화 작업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97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김윤신의 조각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이다. ‘둘을 합하여도 하나가 되고, 둘을 나누어도 하나가 된다’는 이 우주적인 문구는 작가에게 작업의 근간이 되는 철학이자 삶의 태도이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가 되고, 그렇게 만난 합이 다시 둘로 나뉘어 각각의 또 다른 하나가 되는 역학의 반복은 곧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작업은 자신 앞에 주어진 재료를 관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눈 앞의 나무를 오랜 시간 바라보며 그 대상과 충분한 대화를 나누다 한 순간 전기톱을 들고 거침없이 나무를 잘라 나간다. 이렇게 조각의 재료인 나무와 작가가 하나가 되며 합(合)을 이루고, 그러한 합치의 과정은 나무의 단면을 쪼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러 분(分)의 단계들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물로 비로소 또 하나의 진정한 분(分), 즉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K1에서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의 근원이 되는 1970년대 작 〈기원쌓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작가가 꾸준히 매진해온 원목 조각들과 함께 회화 작업의 일부가 소개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찰하며 초월적 존재에 닿고자 하는 염원의 정서는 일찍이 그의 초기 작업에서부터 엿볼 수 있는 특징이다. 초창기 전통에 대한 (재)해석에 유독 관심을 보이기도 한 그는 민간신앙 속 장승의 모습이나 돌 쌓기 풍습 등의 토템에 영향을 받아 나무를 수직적으로 쌓아 올렸다. 그에 대한 형식적 변주는 자연스레 〈합이합일 분이분일〉 연작에 이르게 되었다. 


알가로보 나무, 라파초 나무, 올리브 나무 등 다양한 원목이 그의 손을 거쳐 다채로운 형태의 ‘기도’가 되었다. 특히 그의 톱질을 통해 드러나는 나무의 속살과 원래의 모습 그대로 살려둔 나무의 거친 껍질이 시각적 대조를 이루며 그만의 개성을 보여준다. 


K2에서는 아르헨티나의 대지, 그 특유의 에너지와 생명력을 연상시키는 회화와 회화 조각을 대거 볼 수 있다. 조각과 일맥상통하며 표면의 분할을 특징으로 하는 김윤신의 회화는 남미의 토속색과 한국의 오방색에서 영감받은 원색의 색감으로 제작되는가 하면, 멕시코 여행을 계기로 아스테카의 흔적을 입기도 하는 등 작가의 환경과 심경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루어지다〉, 〈내 영혼의 노래〉, 〈원초적 생명력〉 등 회화와 조각을 아우르는 김윤신의 ‘회화 조각’들은 시각적 문법은 자연스레 목조각에 채색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목재 파편 내지 폐목을 재활용해 자르고 붙여 색을 입힌 또 하나의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보여준다. 
생을 관통해 매 순간 도약해온 김윤신은 열린 마음으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실험 및 도전정신을 보여준다.   

 

강서경의 《마치 MARCH》, 행군하듯 토양을 다지는 조각과 회화 선봬

 

강서경의 개인전 《마치 MARCH》는 입체적인 봄의 산수화다. 지난해 암투병 속에 리움미술관 전관에서 치룬 개인전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이후 국제 갤러리 K3에서 펼치는 첫 전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으나 회화보다는 조각이나 오브제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회화란 눈에 보이는 사각형과 보이지 않는 사각 공간을 인지하고,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를 고민하는 작업이다”라고 말한다. 

 

강서경은 현대사회에서 각 개인이 굳건히 딛고 설 수 있는, 나아가 뿌리내릴 수 있는 땅의 규격을 자신만의 그리드로 표현하며 그 범주를 조금씩 확장해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지난 3월에 시작된 이 전시는, 마치 행군하듯 힘껏 발걸음을 내디디며 다시 한번 스스로의 토양을 단단히 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에 이르렀다. 
작가는 ‘시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작품의 주요 개념인 ‘정(井)’ 및 ‘모라(Mora)’를 중심에 두고, 신작 조각과 회화군을 준비했다.  

 

작가의 시각적 문법을 관통하는 사각 그리드의 논리는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창안한 유량악보인 ‘정간보(井間譜)’의 기호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바둑판처럼 생긴 정간보 안에서 ‘우물 정(井)’자 모양의 각 칸은 음의 길이와 높이를 나타낸다. 작가는 이 사각의 틀을 개념적으로 번안해 회화의 확장의 무대로 삼았다. 마치 땅속 깊이 파고든 우물 같기도 하다. 


강서경은 각 ‘정’의 터전 위에서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쌓아 올리며 자신의 회화가 서술하는 시공간을 확장해 나아간다. 그동안 다양한 형태의 ‘정’이 강서경의 여러 회화 및 조각의 물리적 틀로 기능하며 무한한 시공간을 담는 그만의 회화를 구축해왔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비단에 그린 새로운 회화군의 터전으로 그 여정을 이어간다. 

 

언어학에서 ‘모라’는 음절 한 마디보다 짧은 단위를 칭한다. 자신의 회화를 시간을 담는 틀로 활용하는 강서경에게 ‘모라’는 회화, 즉 서사가 축적될 수 있는 시간의 시각화된 단위를 뜻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모라 — 누하〉 연작은 시간성을 그리고자 하는 작가의 열망을 어쩌면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군이라 할 수 있다. 


본래 강서경은 캔버스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림을 그린다. 수평으로 눕힌 캔버스 위로 쌓아 올리는 물감은 캔버스의 네 옆면으로 흘러내리게 마련이고 각기 다른 물감이 흘러내린 흔적을 통해 시간의 층위를 직관적으로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부분은 강서경 회화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아워스 — 일〉 연작 안에서 강서경의 〈모라〉 회화는 둥근 나무 프레임 안에 담긴다. 실을 꼬아 수놓은 나무 프레임은 생(生)에 대한 작가의 예찬이자 여성의 노동의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더 나아가 나무 프레임의 둥근 형태는 그 모양으로서 직접적으로 시간의 순환을 상징한다. 

 

그러한 나무 프레임이 감싸고 있는 반투명한 비단은 새벽과 석양의 하늘빛을 닮도록 은은하게 염색되어 있다.  한편 K3의 천장과 바닥에는 작가의 새로운 조각군이 소개된다. 브론즈를 구부리고 표면을 두드려 제작한 신작 〈산 — 아워스〉는 공중에서 낮게 매달려 관람객을 맞이하는가 하면, 나무 좌대 위에 선 둥근 형태의 작업은 벽면의 다른 회화를 작품 내부의 공간으로 함께 담아낸다. 꽃잎을 닮은 곡선 고리를 두른 〈산 — 꽃〉은 돌고 도는  시간의 순환을 상기시키며 봄의 풍경에 점을 찍는다. 


강서경의 작품은 굳이 틀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회화,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회화적 언어를 확장시켰다. 특히, ‘진정한 풍경 (眞景)’에 대한 현대적 표현방식을 실험하며 현 사회 풍경 속 개인의 자리를 고찰한다. 


전통이라는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해 구축해낸 새로운 시공간 속에서 각 작품군은 서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이며 오늘날 개인이 뿌리내릴 수 있는 역사적 축으로서의 공간적 서사를 제공한다. 
강서경은 2018년 아트 바젤에서 ‘발로아즈 예술상(Baloise Art Prize)’을 수상했다.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2018), 베니스비엔날레(2019), 상하이 비엔날레(2018), 광주비엔날레(2018) 등에서 전시했다.  
  
<사진 = 국제갤러리 제공>

이화순 칼럼니스트(Ph.D) artvisio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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