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⑬ - 앵봉산

2020.12.23 13:49:40

 

[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  오늘은 앵봉산이다. 
‘코로나19’ 2.5 단계로 동기들과의 산행도 한주 쉬기로 하여 아침 일찍 삼송역으로 향한다.


앵봉산은 고양시와 은평구가 경계하는 산으로 고양시 쪽으로 서오능을 품고 있는 산이다.
삼송역에 내려 산으로 가는 도중 삼송동 공원의 목 없는 밥 할머니 석상이 눈에 들어온다. 밥 할머니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삼송의 부잣집 며느리로서 북한산성의 노적봉을 볏짚으로 덥고 창릉천의 물에 횟가루를 흘려 왜군에게 식량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며 군사를 도왔으며, 행주대첩에서는 여자들을 독려하여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권율의 행주대첩을 이루어냈다는 여성 의병장의 이야기다.

 

이 여성 의병장을 밥 할머니라 부르며 석상을 만들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목 부분이 아쉽게 훼손되었다 한다. 지금은 고양 밥 할머니 보존 위원회도 있고 매년 제사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앵봉산을 오르는 길은 40 초반 골프에 입문할 때 처음 왔던 123  골프장이다. 십여 년의 골프에 결국은, 연습은 적게 하고  잘 치고 싶다는, 치졸한 욕망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나의 탐욕의 갈증만을 남긴 체, 대범(?)하게 ‘재능 없음’으로 포장하고 포기했지만, 그 시절 골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던 시간이  있었음이 생각나 빙긋이 미소가 인다.


가파르게 오른 앵봉산 헬기장에서는 지축과 삼송 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연이 도시화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이곳부터는 나목들이 떨어낸 수북한 낙엽 위에 나무들이 서 있다. 나목을 보고 있노라니 미래에셋의 은퇴 연구소 소장 김경록의 <벌거벗을 용기>라는 책의 구절이 생각난다. 


“삶의 마지막 숨결에서 인간은 몸통과 가지마저 벗어버린 자신의 벌거숭이 모습을 마주합니다. 아마 영혼과 같은 삶의 뿌리를 보게 될지 모릅니다. 사람은 벌거벗은 채 태어나 마지막에 벌거벗은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은퇴 후의 삶은 사회적 지위와 명성도 다 내려놓고 벌거벗은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늠름한 상수리 나목을 비유한 작가의 발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풍광이다.


혼자서 하는 산행은 자연히 상념에 젖기 마련이다. 이만큼 살아온 날들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란 무엇인가?


살아보니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그 차이가 불교에서는 삼천세계가 넘는 어마어마한 세상이 있다는 말도, 뇌 과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저마다의 인식과 경험을 통해 나름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도 70억 인구의 70억 세계가 존재하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는 사피엔스는 7만 년 전의 인지혁명, 1만 2천 년 전의 농업혁명, 5백 년 전의 과학혁명으로 인류가 급속히 진화했다고 한다.


그 중, 인지혁명, 즉, 허구를 믿는 힘, 그로 인해 미신이 생기고, 신이 생기고, 다른 종에 비해 엄청난 차이를 이를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보는 범위 안에서, 나름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고, 그 인지의 혁명으로 허구에 대한 믿음이 신도 되고, 신념도 되고, 명예도 된다 한다. 


명예는 사람이 만든 틀, 공자의 ‘인(仁)’과 같은 것이라, 현대의 미셀 파코의 ‘감시와 처벌’에서는 ‘파놉티콘’ 즉 공자의 인이라는 기준을 세우면, 그 인에 다다른 사람과 모자라는 사람이 생기게 되며, 그에 따른 자기 검열과 권력의 욕구에 따라 규율과 복종이 생기고, 자신을 통제하는 자기통제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내 명예는 내가 만든 나의 덫에 불과할 뿐인데. 그저 있는 세상을 그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색안경을 더 쓰는 것 뿐인데.


요즘 읽고 있는 동물학자 루시쿡의 <오해의 동물원>에는 진화론을 내세운 다윈의 독수리에 대한 비난을 반박하고 비판하는 것을 보며, 아무리 생물학계의 위대한 거물에 대해서도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다윈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는 다윈은 진화론을 발표할 때 교회의 창조론에 반하여 교회와 신도들의 수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으나 ‘웨스트 민스턴’ 사원에 안장될 정도로 훌륭한 과학자의 명성을 얻었더라도 그런 다윈도 잘못된 관점이 있고 그런 점은 지적되고 수정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혼자서 이런저런 상념으로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정상은 방송국 송신탑 설비들이 있고 아래로 서오능 숲이 펼쳐 보인다.


저 아래 보이는 서오능은 그야말로 숙종 중심의 무대로, 제1비 인경왕후, 2비 인현왕후, 3비 인공왕후와, 숙종, 그리고 중전에서 다시 쫓겨난 장희빈의 대빈묘가 있는 숙종 시대 이야기의 중심이다. 


오후의 친구 딸 결혼식에 맞추려면 서오능 관람은 어려울 것 같다. 500년 역사의 주인공들이 모여있는 무덤에서 그때 살던 사람들의 숨결을 더듬을 수 있는데, 필부의 삶을 살아온 나로서는 현재의 삶에 좀 더 많은 의미로 살아가야겠다.


버스를 기다리며, 돌아보면 삶은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며 그 소통이 원활치 못할 때, 화가 나고, 싸우고, 미워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 불교의 야부 선사의 말이 생각난다. 


지불책우(智不責愚,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꾸짖지 않는다).
배운다는 것은 남을 이해하는 거다. 탓하며 남에게 돌리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배운 사람이 이해하는 거다.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나무(자기 : 我, 없을 : 無)는 나를 버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숲을 이룬다’ 했으니 산에 사는 나무는 나무라는 법이 없단다. 오늘 산행은 나무라지 않는 나무를 보며 야부 선사를 떠올릴 수 있는, 야부 선사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  있는 울림이 있는 하루였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병욱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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