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조종림 기자]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은 실제 사건(제2연평해전)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다. 연출을 맡은 김학순 감독이 이 작품을 "희생자를 위한 헌시"로 표현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연평해전'은 영화이지만, 영화로 그치지 않는다. 요컨대 '연평해전'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는 대중적 파급력에 기댄 일종의 기록에 가깝다.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연평해전'에 기여한 영화를 이루는 요소 중 두드러진 한 가지를 꼽자면, 역시 배우들의 연기다. 김무열, 이현우, 진구 등이 이 영화에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고 하기는 힘들 것이다. 애초에 '연평해전'은 배우에게 허락된 행동반경이 넓은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연기로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영화가 집중하고자 한 것은 세상을 떠난 6용사였을 것이다. 김학순 감독은 대중영화의 틀에 사건을 집어넣기 위해 다시 6용사 중 3용사(윤영하 대위, 한상국 하사, 박동혁 상병)를 택했다. 이들을 연기한 배우 김무열과 진구, 이현우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데 대한 부담감을 여러 자리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런 부담감이 어디 이들뿐이었을까. 추측이지만, 당시 참수리357호에 탔던 군인의 실제 이름을 부여받은 모든 배우들은 3명의 주연 배우 못지않은 사명감으로 영화에 임했을 것이다. 배우 김동희(29)도 그런 배우 중 한 명이다.
김동희가 맡은 역할은 박동혁 상병의 절친한 동료로 나오는 '권기영 상병'이다. 신인배우가 제안이 들어온 역할을 거절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김동희는 권기영 상병 역을 거절했다.
"아픈 내용을 담은 영화잖아요. 실화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김학순 감독님에게 무서워 못 하겠다고 말했어요. 용기가 안 난다고. 제가 지금까지 했던 역할 중에 가장 큰 역할인데, 이 정도 역할을 할 깜냥이 제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김학순 감독이 보내준 김동희에게 보내준 믿음과 신뢰 때문에 그는 촬영 열흘을 앞두고 영화에 합류했다. 합류했다고 다가 아니다. 이제 연기를 해야 한다. '권기영'을 연기하는 김동희의 생각은 하나, "권기영 형에게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였다. 그는 "내 방식대로만 연기할 수는 없었다. 그분은 살아계신다. 유가족도 있고, 생존자도 있었다. 어떻게 내 맘대로 연기하겠나"라고 설명했다.
김동희는 당시 교전에 참여했던 권기영 씨에게 의지했다. 촬영 전에는 권 씨와 술자리를 함께 했고, 촬영 중에는 그와 자주 통화하면서 당시 권 씨의 심정을 이해하려고 했다. 김동희는 권기영 씨가 자신에게 해줬던 말 중에 "너를 믿는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촬영하다가 힘들었던 순간이 있어요. 자꾸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때 술 한 잔 마시고 기영이 형한테 전화했어요. 하소연 좀 했죠. 그때 기영이 형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를 믿는다. 우리를 위해서 조금만 버티고, 이겨냈으면 좋겠다.' 정말 큰 힘이 됐어요."
영화 속 김동희에게서는 부담감이 보이지 않는다. 그의 연기는 김무열, 진구, 이현우 못지않게 자연스럽다. 김동희는 자상하고, 친절한 전우의 모습과 함께 교전 상황에서는 잘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북한군을 상대로 총을 쏘는 투혼도 보여준다. 그는 교전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는다.
전투 장면 촬영은 배우 진구가 가장 먼저 했다. 김동희는 촬영에 앞서 진구의 연기를 가편집본으로 봤다. 그리고 감동 받았다.
"진구 선배 혼자 찍은 장면이었어요. 카메라 앞에서 그냥 혼자 연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하시더라고요. 이렇게 연기해야 한다는 걸 알았죠. 진구 선배님이 기준점을 알려줬어요."
김동희의 데뷔작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다. 1986년생인 그의 데뷔를 빠르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부터 끊이지 않고 드라마와 영화에 모습을 비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역할이 작지만,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인배우에게는 행복한 일일 수 있다. '연평해전'의 권기영은 김동희가 한 연기 중 가장 분량이 많은 역할이었다.
"'연평해전'은 배우로서나 인간 김동희로서나 성장할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공부였습니다. 연기에 욕심도 더 생기고, 자신감이 더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