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벨트, 그들의 운명은?

2006.07.24 17:07:07

칠레,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볼리비아…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국제뉴스에 한 두 번 쯤 눈을 돌려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들 나라는 남미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파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다. 1990년 피노체트 군사정권을 몰아내고 남미에서 좌파정권의 깃발을 꽂은 칠레부터 시작해서, ‘반미의 전도사’ 차베스 대통령의 존재감이 뚜렷한 베네수엘라, 짝퉁좌파라는 비난을 받기는 하지만 엄연히 좌파정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까지. 12개 나라 중 6개 나라가 좌파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남미는 말 그대로 좌파의 성지에 다름없다. 같은 시각, 인종주의가 만연하는 등 우파바람이 불고 있는 유럽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멕시코 대선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하나의 좌파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멕시코는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 멕시코는 좌파라면 치를 떠는 미국과 살을 맞댄 유일한 나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22만표 차이로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에게 석패 했지만 오브라도르 후보 측이 개표 결과에 불복종, 선거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힌 상태라 최종 결과가 나오는 9월 6일까지 멕시코는 어수선할 수 밖에 없다.
멕시코 대선이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지난해부터 중남미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좌파 바람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까지 불어 닥치는 것이냐는 것 때문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고 미국산 콩, 옥수수 수입도 금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 오브라도르 후보가 당선되고 캐나다와 함께 영원한 미국 편으로 여겨졌던 멕시코에서 첫 좌파 정권이 나올 경우 미국의 중남미 정책 전반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예측도 많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멕시코 대선이 좌파 바람이 거세지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일단 멕시코에서 좌파 후보의 석패에 따라 중남미의 ‘좌파도미노’는 멈춰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난 5월, 콜롬비아 대선에서 친미 강경 보수주의자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으며, 지난달 페루 대선에서는 ‘제2의 차베스’라 불리던 급진 좌파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중도 좌파 알란 가르시아 전 대통령에 역전패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선거는 많이 남아 있다. 오는 10월 1일 시작되는 브라질 대선을 시작으로 에콰도르,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등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며, 모두 좌파의 정권창출이 점쳐진다. 이렇게 될 경우 남미의 좌파 국가는 최대 7~8개를 넘어설 수 있다. 멕시코, 페루에서 좌파후보가 패배하기는 했지만 중남미 좌파는 아직 꺽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정책 실패가 좌파정권 낳는다
그렇다면 중남미에서 좌파정권이 들어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문제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행에서 나온 '남미지역의 좌파정권 확산 배경 및 향후 전망'이라는 보고서는 중남미 좌파 바람의 원인의 첫 번째로 종전 우파정권들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실패를 꼽는다. 90년대 초까지 중남미를 장악하고 있던 우파정권이 실시한 경제구조 개혁, 무역 및 자본자유화, 재정 및 통화긴축, 기간산업 민영화, 규제완화 정책은 ‘반짝 효과’를 내기는 했지만, 1998년 이후 각 나라를 극심한 경제침체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중남미 우파정권에 대해 “80년대 이래 추진한 세계화 및 자유무역 전략의 성공에 필수적인 기술경쟁력 확보, 생산시설에 대한 투자확대를 충분히 이루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층의 반발 등으로 경제구조조정도 당초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 중남미의 심각한 빈곤, 실업 등 양극화 문제도 좌파바람의 발원지로 꼽힌다. 여전히 중남미지역 전체인구의 43%인 2억2,000만명이 빈민층이며, 이 중 1억 명은 하루 생활비 1달러 미만의 절대 빈민층이라는 통계는 중남미가 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중남미 국민들이 교육 및 보건 분야에 대한 개혁조치와 이를 추진할 정부를 선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 9.11사태 이후 미국의 외교정책이 테러억제 위주의 일방주의로 바뀌고 남미지역을 상대적으로 경시하게 되면서 남미지역에서 반미감정이 확산된 것도 중남미 좌파의 확산을 부추겼다. 페루, 베네수엘라 등 일부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선거 승리를 위해 반미 민족주의를 주창한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대해 미국언론들은 "현재 미국과 남미지역간의 관계는 냉전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면서 "최근의 관계악화는 미국과 남미지역 모두에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보이기도 했다.

‘자원민족주의’ 차베스형 좌파 ‘실용주의’ 룰라형 좌파
그러나 중남미에서 만들어진 좌파정권이 모두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과 반미노선을 표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형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차베스형에서부터 실용주의를 앞세운 브라질의 룰라형까지 중남미 좌파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중 차베스형 좌파정권의 경우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강한 자원민족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외국자본 주도의 에너지개발 등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에 반대하며 석유, 천연가스에 대한 국가통제권을 강조한다. 최근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의 석유기업인 엑슨모빌을 상대로 "베네수엘라 정부주도의 에너지합자사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촉구한 바 있다.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자도 "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외국자본과 기득권층이 독점하고 있는 에너지사업의 국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행보는 34%의 석유를 중남미에서 수입하는 미국으로서는 눈엣 가시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미국 입장에서 그나마 "말이 통한다"고 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좌파. 브라질, 칠레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소외계층을 위한 재분배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장친화적인 정책도 상당부분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룰라 대통령이 집권 후 IMF의 재정긴축 권고를 수용, 외채상환을 약속하고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것 등이 대표적이다. 또 2003년 집권한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대통령도 적극적인 외자유치, 페소화 약세유도를 통한 수출촉진 정책 등을 추진하는 동시에 교육, 보건, 연금에 대한 정부통제 강화 및 세제개혁을 통한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시행하는 실용주의적인 노선을 걷는 좌파로 꼽힌다.

경제성장 분배가 관건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좌파정권의 성공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기존 우파정권에 비해 그나마 경제성장은 잘하고 있지만 양극화 개선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좌파정권의 성공여부는 현재의 경제성장을 얼마나 지속시키고, 이를 분배하느냐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숙제를 푸는데 실패할 경우 중남미 국민들이 다시 좌파정권에게서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중요한 변수가 있다. 바로 차세대 초강대국으로 꼽히는 중국이다. 미국에 대한 의존을 낮추는 경제성장을 목표로 한 중남미 좌파정권에게 중국만한 교역대상도 없다. 여기에 남미지역의 자원 및 식량 공급능력에 주목한 중국도 남미의 '러브콜'에 따듯한 화답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 상황이다. 실례로 중국 정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을 상대로 자원개발, 도로, 항만 등 남미지역 인프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협력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4년 중국 후진타오 주석은 브라질에 대해서는 2006년까지 100억달러, 아르헨티나에 대해서는 향후 10년간 2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계획을 약속하는 당근을 건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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