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운 퀴어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다. 동성애적 코드로 흥행 최고 기록을 갱신한 ‘왕의 남자’를 비롯, 아카데미 수상 등으로 개봉 전부터 주목받은 ‘브로크백 마운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 폭 넓은 마니아를 가지고 있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 프랑스와 오종 감독의 ‘타임 투 리브’ 등이 모두 화제작이다.
그 동안 퀴어영화들에 비해 흥행적으로나 작품성 모두 묵직한 비중을 가지게 된 것도 최근 동성애 코드 영화들의 특징.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가 동성간의 성애 장면을 삭제해야 했던 1998년의 상황과 달리, 최근 개봉한 영화들은 개봉과 수용 모두 큰 탈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변화된 대중의 의식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 속 일부 장치로 슬쩍 끼워 넣기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은 ‘진정으로’ 줄어든 것일까? 물론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적 시선이나 관객들의 의식수준은 한 단계 진보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진보의 크기 보다는 여전히 높은 벽을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 더 크다는 것이 평론가와 동성애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최근 개봉한 대부분의 퀴어 영화들은 본격적인 동성애 담론이기보다는 동성애 코드를 영화 속의 일부 장치로 사용한다. 보편적인 주제에 동성애를 슬쩍 집어넣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 1일 열린 한국동성애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공개좌담회에서 박진형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관객을 흡인할 수 있는 고전적 흥행코드를 바탕으로 동성애 코드를 녹였기 때문에 대중들이 거부감 없이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메종 드 히미코’나 ‘타임투 리브’는 보편적인 인간애로 동성애를 풀어나간다. 그나마 동성애에 대한 성찰을 가장 본격화하고 있는 ‘브로크백 마운틴’ 역시 멜로드라마와 대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동성애를 녹여낸 것이 흥행 비법이었다. 퀴어웨이브를 이루는 유일한 한국 영화인 ‘왕의 남자’는 가장 교묘하고 가장 간접적인 방법으로 동성애 코드를 이용한 예로 거론된다.
‘공길’은 이성애자들의 동성애 이미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천호진이 등장한 동성애 에피소드는 대부분 동성애자들이 비교적 현실적으로 느꼈지만, 관객들은 ‘비호감’을 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동성애자들이 전혀 공감하지 않았던 ‘왕의 남자’는 오히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 감정의 간격이 동성애에 대한 의식 수준과 이 같은 의식을 이용하는 흥행 전략을 보여준다.
스토리의 얼개 속에 동성애 코드를 자연스럽게 배치하면서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장치들을 충분히 가미한 연출 기술이 관건이었지만, 관객 대다수인 이성애자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동성애 이미지를 끌어낸 것은 결정적이었다. 동성애를 혐오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 하는 주류이데올로기의 이중성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동성애자들은 그래서 ‘왕의 남자’를 통해 형성된 ‘예쁜 남자’ 신드롬이 반갑지 않다. 박진형 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는 현실의 동성애자들과 차이가 큰 이준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준기로 인해 동성애자가 ‘예쁜 남자’로 이미지화하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며 동성애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부추기는 상업적 장치들을 비판했다.
영화 속의 퀴어 코드들은 동성애에 대한 시대의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동성애자에 대한 시각은 왜곡과 편견, 호기심, 그리고 약간의 동정과 이해 속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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