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현대인의 수면 질은 점차 나빠지고 있다. 잠에서 깰 때 개운한 느낌이 드는 ‘꿀잠’이 힘든 생활이 오래 반복된다면 건강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부족한 수면시간, 또는 계속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지나치게 길어지는 수면시간 모두 문제다. 질 나쁜 수면은 심혈관 질환, 뇌졸중, 우울증, 치매 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노인성 난청 발생률 높아져
수면의 질이 낮으면 제 2형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김영식 교수팀이 성인(40~75세) 563명을 대상으로 2년 6개월 동안 수면의 질과 당뇨병 유병률의 관계를 추적 분석한 결과, 수면의 질이 낮은 사람은 높은 사람 비해 유병률이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밤에 뒤척이거나 자주 깨면서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은 잘 자는 사람에 비해 당뇨병 발생 위험이 2.6배 높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수면의 질이 낮으면 체내 당 대사가 교란되고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은 물론 식욕억제호르몬인 렙틴의 분비가 감소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면의 질은 심혈관질환과도 관련이 있다. 성균관의대 강북삼성병원은 코호트 연구소 김찬원 교수팀이 건강검진을 받은 4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면시간이 부적절하거나 수면 질이 낮을수록 심근 경색 발병 위험이 높다고 밝혔다. 연구는 대상자들에게 최근 한 달 동안의 수면 시간과 수면 질을 평가하게 한 후, 심근 경색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관상동맥의 칼슘 침착과 심장에서 나오는 혈류 속도인 맥파 속도 사이의 관련성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너무 적거나 많은 수면 또는 수면 질을 낮게 책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관상동맥석회 수치가 높게 나오는 반면 혈관 맥파속도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맥파속도는 빠를수록 혈관이 딱딱하고 두꺼운 것을 의미, 혈관노화가 진행된 것으로 간주된다. 또 관상동맥석회 수치는 혈관 내부 동맥경화반의 양을 대변함으로써 심근경색발생을 예측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조사에서는 수면 시간이 5시간 미만인 사람들은 수면시간이 7시간인 사람들에 비해 관상동맥석회 수치가 50% 이상 높았다. 반면 너무 많은 잠도 심장질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수면시간이 9시간 이상인 사람은 관상동맥석회 수치가 하루 7시간 자는 사람들에 비해 70% 높았다. 수면 질 역시 나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좋다고 느낀 사람에 비해 관상동맥 석회 수치가 20%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수면 시간이 적은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수치의 변화로 석회화 수치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고, 수면시간이 지나치게 긴 경우는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잠을 자주 깨는 혀상으로 교감신경이 항진돼 혈관질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수면시간은 노인성 난청과도 관련이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가정의학과 이영인 교수팀이 40세 이상 성인 5,547명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과 노인성 난청의 상관성을 분석한 결과 수면 시간이 길수록 노인성 난청 발생률이 높아지는 결론을 도출했다.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인 사람 대비 7시간의 경우 난청 발생률은 1.2배, 8시간은 1.4배, 8시간 이상인 사람은 1.5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이에 대한 원인은 불분명하다.
자다 깨는 횟수 높으면 치매 위험
수면은 특히 치매와 관련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에 렝 캘리포니아대 정신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30~40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면과 인지능력 간 상관관계 연구에서 수면의 질이 낮을수록 치매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총수면 시간보다는 잠을 자다가 깨는 횟수인 ‘분절 수면 빈도’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30대 성인 526명을 대상으로 수면의 질을 나타내는 데이터를 수집해 10년 뒤 이들의 인지 기능을 측정했다. 그 결과 수면 시간에 상관없이 분절수면 빈도가 높고 수면의 질이 낮을수록 10년 뒤 인지 기능 테스트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아졌다.
매튜 페이즈 호주 모나시대학의 심리학 및 신경학 부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깊은 잠의 한 종류인 느린 뇌파 수면, 즉 ‘서파수면’이 줄어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평균 69세의 346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면 상태를 관찰한 후 최대 17년이 지난 시점에 이들의 서파수면 양 변화가 치매 발병과 관련이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나이가 들면서 서파수면의 감소가 더 큰 사람들이 향후 17년 안에 치매에 걸릴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서파수면의 감소율은 60세부터 가속화됐고, 75~80세까지 정점을 찍었으며 그 후에는 둔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명승권 국제암대학원대 암관리정책학과 교수와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김홍배 교수팀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하루 수면시간이 8~9시간 이상인 사람은 7~8시간인 사람에 비해 인지장애가 생길 위험성이 38% 높고 치매 위험성도 42%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비정상적인 긴 수면시간은 인지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수면무호흡증과 같은 질병을 의심할 수 있으며 수면의 질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된다.
과격한 행동과 함께 욕을 하는 등 꿈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수면장애의 일종인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 환자의 경우 치매나 파킨슨병의 유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윤인영 교수팀은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로 진단받은 후 신경퇴행성 질환이 나타나지 않은 한국인 환자 198명을 대상으로 연간 신경퇴행성 질환 발병 위험률을 연구 분석한 절반 이상이 14년 이내 신경퇴행성 질환에 걸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발성 렘수면행동장애를 진단받은 환자 중 5년 내 신경퇴행성 질환이 나타난 비율은 12.5%였지만, 14년 내에는 무려 56.6%까지 치솟았다.
윤인영 교수팀이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 122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에서도 환자군의 9%가 렘수면 행동장애를 진단 받은 지 3년 만에 파킨슨병 또는 치매 판정을 받았으며, 18%는 진단 시점으로부터 5년 뒤, 35%는 6년 뒤에 파킨슨병 또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파킨슨병,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나머지 환자군의 46%에서 기억력, 수행능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지속적으로 저하됐다.
우울증도 수면과 연관성이 깊다.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이상암, 김효재 교수팀은 렘수면 행동장애 환자와 일반인의 정신건강 상태를 분석한 결과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을 경우 일반 집단보다 우울증, 감정표현 불능증 유병률이 각 1.5배, 1.6배 높다고 밝혔다.
조윤희 을지대학교 간호학과 교수가 고등학교 1~3학년 학생 2만7,9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수면시간이 하루 7시간 미만일 경우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는 학생보다 자살생각은 1.437배, 우울은 1.420배, 증가 과체중 또는 비만 발생은 1.111배로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