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7일 임명된 이주호 신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간 수장이 없어 쌓여 있던 교육개혁 과제들을 처리해야만 한다.
인구절벽 속 대학에 대한 규제와 평가 틀을 새로 짜야 하고, 기초학력 저하 우려 속 초·중등 교육과정과 새로운 고교체제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하나 만만한 일이 없는 가운데 교육계에서는 속도보다 협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고교학점제가 반영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올해 안에 고시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해 교육과정 업무가 넘어갔지만, 관련법에 해당 교육과정까지는 교육부 장관이 책임지고 연내 고시하도록 돼 있다.
새 교육과정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해야 한다는 보수 교육계의 주장, 노동과 생태교육 관련 표현을 보강해야 한다는 진보 교육계의 요구가 있다. 이 부총리의 갈등 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교육부는 전임 박순애 전 부총리가 '만 5세 입학'으로 사퇴한 후 대안으로 추진 중인 '초등전일제 학교' 추진 방안도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초등전일제 학교는 학생들이 원하는 방과후 과정을 확대해 교육의 국가책임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교사들의 행정업무 부담에 대한 보완책도 내놓겠다고 했으나 교원단체 등의 반발 역시 예상되는 정책이다.
돌봄전담사, 급식 노동자 등 학교비정규직들이 연말 파업도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는 초등 돌봄시간 운영시간을 내년에 오후 8시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 부총리는 자신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 확대했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등 고교체제 개편안 역시 그 시안(초안)을 올해 안에 내놓아야 한다.
앞서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자사고 존치를 골자로 한 새 고교체제 개편안 시안을 연내 마련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6월 개편안을 확정 짓겠다고 밝혔다.
대학 규제 완화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던 이 부총리는 고등교육(대학) 분야에서도 현안을 다수 눈앞에 두고 있다.
당장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 제도 개편이 교육계 뇌관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시도교육청 재원인 교육교부금에 대해 현 정부는 초·중등 분야에 정부 재정 투입이 너무 많다며 이를 활용한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마련을 추진 중이다.
진보 성향 조희연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장을 필두로 전국 교육감들이 공개 반발하고 있는데다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도 부정적인 입장이라 하반기 예산 국회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점쳐진다.
교육재정 전문가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는 "이 부총리는 과거에도 누리과정(만 5세 공통 교육과정) 도입 당시 교육교부금에서 지원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는데 많은 혼란이 있었다"며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경제 논리가 아니라 교육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대학들을 평가해 국고를 지원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 개편안도 연내 마련하기로 했던 상태다.
교육부는 과거 입학정원 감축에 초점을 맞춘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시행했지만, 획일적 평가로 대학 자율성이 침해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현재의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개편했던 바 있다.
하지만 대학들이 평가를 두고 부담이 크다고 지적하자 교육부는 최하위 한계대학을 뺀 모든 대학에 추가 평가 없이 재정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관련 법 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할 경우 이 부총리는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위한 대안을 찾아야만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수도권 정원 증원도 포함된 반도체 인재양성 방안으로 반발했던 지방대학 총장들과 논의 중인 고등교육혁신 마스터플랜 역시 올해 안에 내놓기로 했던 바 있다.
코로나19 유행 속 원격수업으로 야기된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 문제도 그가 마주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들의 기초학력이 너무 떨어져 있어 전반적으로 한번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기초학력을 한날 한시에 전체적으로, 특히 초등학교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총리는 국회 서면답변서 등을 통해 자신의 교육 비전으로 "다양화를 넘어 개별화된 맞춤 교육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중장기적으로 이 부총리는 인공지능(AI) 기술 등을 활용한 에듀테크를 내세워 학생 개개인의 진로, 적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을 추진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하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과거 에듀테크 업계로부터 후원금과 협회 출연금을 받는 등 이른바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교육부는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골자의 기초학력 종합계획을 내놨지만, 사실상의 전수평가, 일제고사 부활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교육부는 자율평가가 동시에 같은 시험지로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일제고사 부활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대학에 대한 규제가 어느 정도까지 풀릴지도 관심이다.
등록금을 법정 한도까지 인상할 수 있도록 허용하거나 의대 입학정원 확대 등의 문제는 사회적인 갈등이 야기될 수 있어 정치권에서도 조심스러워 하는 문제다.
이 부총리는 앞서 3월 케이(K)정책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전문가들과 공저한 '대학혁신을 위한 정부 개혁 방안' 보고서에서 등록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인사청문회에서는 신중 기조로 선회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부총리가 과거처럼 소신을 강하게 밀어 붙이기보다 과거 경험을 고려해 대화와 타협을 통한 공통분모를 만들어 주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 교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새로 생기기도 했고, 장관은 책임 있게, 진중하게 풀어가는 모습을 보이며 숙려기간을 자꾸 가져야 한다"며 "장관이든 누구든 너무 앞질러 말하는 것보다 숙려기간을 갖는 게 필요하고 전문가 집단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정책은 일방적으로 옳은 정책도 틀린 정책도 없다"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공통분모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고, 장관은 교수가 아닌 만큼 자기 소신을 너무 앞세우면 무리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