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주민 1200여명을 소개하도록 하는 이스라엘 대법원이 명령하면서 현지 주민들이 주택파괴와 강제 소개를 피해 지하 동굴에서 생활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또 유엔이 이스라엘의 주민 소개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밝히는 것으로 전했다.
이스라엘 점령 서안의 시골 히르벳 알-파헤이트 마을 주민 와드하 아유브 아부 사바(65)는 "집도 텐트도 없어서 동굴 말고는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동굴에서 태어나 동굴에서 죽게 됐다"고 말했다.
이 지역 동굴에서 선조들이 오래도록 살아온 아부 사바의 마을 주민들과 인근 유목민 그룹이 수십년 동안 살아온 집에서 자신들을 쫓아내려는 시도에 맞서 왔다. 이곳 주민들 일부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지난 5월 이스라엘 대법원이 약 1200명의 이곳 주민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 육군이 이 땅을 실사격 훈련장으로 사용하도록 승인했다. 이 결정으로 1967년 이래 최대 규모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축출되게 됐다. 유엔은 이 조치가 전쟁 범죄가 될 수 있다고 밝힌다.
마사페르 야타라는 구릉지 곳곳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노심초사하면서 동굴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곳에 사는 팔레스타인들이 영구 거주민들이 아니며 이스라엘이 이곳을 폐쇄된 군사지역으로 설정할 권한이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당국은 이 지역의 주택 등 건축물들을 건축허가가 없다며 허물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건축허가를 내준 적이 거의 없으며 주민들은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짓곤 했다.
아부 사바는 집이 세번째 허물어진 뒤 가족들과 함께 임시로 사용되지 않는 병원으로 이사했으며 마을 아래의 동굴에서 살 준비를 하고 있다. 동굴은 이들이 키우는 양 우리를 지난 입구가 있으며 오래도록 드나든 탓에 암석들이 매끌매끌 닳아 있다.
아부 사바의 사촌 인쉬라 아마드 아부 사마(58)이 최근 동굴에 다녀와서는 리얼리티 TV 쇼에 나오는 집수리를 하는 마냥 들떠 있었다. 그는 동굴 암벽을 가리키면서 이곳에 선반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바닥에서 거미줄이 쳐진 천장에 매달린 전등을 "저쪽으로 옮겨야겠다"고도 했다.
자주색 가운과 적백색의 두건을 쓴 그가 바위에 앉아서 동굴에 있는 세 곳의 방처럼 생긴 중 곳들중 가장 작은 곳을 바라봤다. "저긴 자이나브가 쓰면 되겠네"라고 흙바닥에서 놀고 있는 아부 사바의 3살자리 손녀에게 말했다. "네 방이 어떠니 자이나브?"
아마드 아부 사바는 이 동굴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던 청소년기를 회상했다. 1980년대 주민들이 지상으로 옮겨 텐트를 세웠고 2000년대에 집을 지었다. 그는 "우리가 80년대 이전엔 이곳에서 살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이곳의 다른 동굴에서 1964년 태어났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1980년대초부터 마사페르 야타 지역의 많은 곳을 사격장으로 지정했다. 이스라엘은 사격장으로 지정하기 전까지 오래도록 이곳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영구 거주자가 아니라고 간주해왔다.
이스라엘은 주택을 허무는 외에도 유엔이 이 지역 팔레스타인주민들이 살기 힘들게 만드는 "강압적 조치"라고 지목한 일들을 벌여왔다. 차량을 몰수하고 구호단체의 접근을 차단하고 마을 사이에 검문소를 설치해 아이들과 교사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현지 지도자들과 지원 단체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스라엘 인권협회 책임자 노아 사타는 "강제 이주는 제네바 인권협약에 위배되며 이주가 사람들을 트럭에 태워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방식도 아니다. 서서히 주민들을 학대해 이들이 떠나도록 만드는 방식의 강제 이주도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이 지역 주민들을 쫓아내는 건 인종청소라고 말해왔으며 동예루살롐 등 요르단강 서안 점령지의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지지자들은 건축법이 자신들을 몰아내고 유대인 정착자와 정착촌에 유리하게 작용해왔다고 강조한다.
2년전 현지 지도자들이 마사페르 야타 지역 주민들이 동굴밖에는 살 곳이 없다고 결정했다. 그들에게는 축출 명령이 내려져 있지만 이스라엘군이 강제 축출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조치다.
동굴 개조작업은 느리게 진척되고 있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주민들도 많지 않다. 지원단체들이 흙바닥과 암벽에 콘크리트를 치고 동굴을 방으로 나누는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사페르 야타가 팔레스타인 땅이라고 주장한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부터 주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해온 땅이라는 것이다.
이곳 주민을 대변하는 변호사들이 이스라엘 법원에 지난 45년 이상 이곳에 마을 주거지가 계속 이어져 왔다는 항공 사진을 제시했다. 동굴로 이어지는 길에 자동차 바퀴자국도 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국방부가 이 사진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1980년 이전부터 영구적으로 거주해온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면서 이들이 특정 계절에만 이곳에 거주해왔다고 주장했고 법원이 동의했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NYT의 질의에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폐쇄 명령을 위반해 불법적으로 건물을 지었다"고 밝혔다. "법원이 탄원인들이 잠정 명령이 내려져 있는 동안 신의성실에 맞지 않게 불법적으로 건물을 짓고 제시된 타협책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국방부는 이 지역을 사격장으로 지정한 건 군사 작전 관련 국제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엔의 인권조정관 사메르 압델 자베르는 지난 5월 마사페르 야타를 둘러보면서 "점령세력으로서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 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사 훈련장을 마련하기 위해 13개 공동체를 강제하는 건 그 책임에 위배되며 비인도적이고 불법적"이라고 덧붙였다.
미 정부는 마사페르 야타에서 진행되는 일을 주시해왔으며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주민 축출과 주택 철거에 우려를 표시해왔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의 길을 연 1990년대 오슬로 협정은 서안 지역의 3분의 2를 잠정적으로 이스라엘 통제 아래 두 돼 점진적으로 철수해 팔레스타인에게 통제권을 넘기도록 돼 있다.
이스라엘이 군사 점령 상태를 유지하면서 정착촌 건설과 확대를 허용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축출하는 건 국제법 위반이다.
마세페르 야타의 할렛 알-다베 마을에서 5번이나 집을 다시 짓고 있는 자베르 알리 다밥세는 콘크리트 기초 위에 서서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음모가 분명하다. 우린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옆에는 작은 아몬드와 살구, 올리브 과수원이 있었다. 타일공으로 일하는 다밥세는 5가족의 가장이며 자기 가족이 지역 땅 소유주임을 밝히는 오스만제국 시대의 증서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이스라엘군이 다밥세 과수원 아래 계곡에서 실사격과 폭발 훈련을 실시했다. 한 이스라엘 인권 단체에 따르면 훈련 당시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집의 천장을 중기관포 대구경 탄환이 맞췄다. 이스라엘 협회가 법원에 훈련 중단을 위한 비상 개입을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변호사들은 모든 법적 수단이 통하지 않아 외교적 압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힌다.
동굴에서 살 준비를 하는 마을 주민들은 불도저가 오지 않는지 조마조마해한다. 다밥세는 "동굴이 아니면 어디서 살란 말이냐. 집을 허물고 텐트를 압수할 수 있다. 그 X자식들 때문에 조상처럼 살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