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서명한 우크라이나 점령지 4개 지역에 대한 계엄령은 오는 20일 0시부터 효력을 발휘한다고 타스 통신과 CNN 등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계엄령과 국무총리 산하 특별위원회 구성에 관한 포고령 2건은 발효 시기를 20일 0시로 명시해 크렘린궁 국가법령시스템에 등록됐다. 앞서 러시아 연방 평의회(상원)는 계엄령 등 2건의 대통령령을 승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화상으로 주재한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점령지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자포리자·헤르손주 4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한 뒤 관련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계엄령은 전시를 비롯한 국가비상사태 때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대통령이 발동하는 고유 권한이다. 헌법 효력이 일부 중지되고, 치안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군대의 권한과 사법기관의 권한이 한층 강화된다.
빅토르 보돌라츠키 러시아 국가두마 부국장은 "계엄령 도입은 평시 체제와 달리 모든 보안과 법 집행 기관의 권한이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고 타스 통신은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계엄령에서 점령지 4개 지역 행정수반에 지역 안보 보장을 위한 추가 권한을 부여했다. 해당 지역에 각각의 영토방어본부 창설을 지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푸틴 대통령은 또 별도의 대통령령으로 미하일 미슈스틴 국무총리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설치, 범정부 차원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지원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미슈스틴 총리는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국방부·내무부·국방경비대·연방보안국(FSB)·대외정보국(FIS) 연방정부 등을 총괄하게 됐다. 계엄령 발효 3일 이내에 푸틴 대통령에게 특별위원회 운영안을 보고하기로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계엄령에는 권한을 위임받은 각 지역 군대는 주민들에게 통행금지령을 내릴 수 있고, 어길 시에는 최대 30일 간 구금이 처해지는 내용이 담겼다. 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으며, 통신 감시도 보장하고 있다.
또 계엄군이 민간 재산을 압류할 수도 있다. 반(反) 정부 인사로 간주되는 모든 시민을 강제 억류할 수도 있다. 다른 지역의 주민을 계엄 지역으로 강제 이주·정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올렉시 다닐로우 우크라이나 국가안보 국방위원회 서기는 "푸틴이 강제병합 지역에 계엄을 선포한 것은 점령지의 민족 구성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해당 지역 우크라이나 주민을 러시아 지역으로 강제 추방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막스 베르크만 국제전략문제연구소 유럽프로그램 소장은 "계엄은 본질적으로 정상적 통치의 중단을 의미한다"며 "본질적으로 계엄 지역에 한해 군대가 모든 것을 지휘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계엄령에는 4개 계엄 지역 외에 기존 러시아 영토이면서 우크라이나 접경지역 8곳에도 이동제한 조치를 적용한다는 담았다. ▲크라스노다르 ▲벨고로트 ▲브리얀스크 ▲보로네즈 ▲쿠르스크 ▲로스토프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등이다. 이에 따라 전선과 가까운 이들 지역 주민들은 승인 없이는 거주지를 이탈할 수 없다.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접경지역 8곳에 대한 이동제한 조치를 담은 계엄령에 관해 "러시아의 국경을 폐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WP에 따르면 계엄령에는 수도 모스크바 등 지역별 대응 태세를 각기 다르게 설정했다. 점령지 4곳은 '최고 대응(maximum response)' 태세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8곳에는 최대 대응 태세보다 한 단계 낮은 '중간 대응' 태세를 발령했다.
대응 태세는 발령 수준에 따라 군대를 지원하기 위한 기업의 용도 변경이 쉽게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군대가 필요한 자원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수준의 통제를 의미한다고 WP는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예비군 30만 명을 대상으로 내렸던 부분 동원령에 이어 계엄령까지 발동한 것은 높아지는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차원의 선택일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러시아 정치 분석가이자 전직 푸틴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 압바스 갈리아모프는 텔레그램에 "동원령과 계엄령 등 일련의 조치들은 푸틴 대통령이 외부의 적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라 러시아 내부에서 무르익고 있는 혁명을 막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부분 동원령 선포 이후 강제징집을 피해 수십 만명이 국경을 넘었고, 수도 모스크바 등 러시아 20개 도시에서는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이런 사회 혼란상이 계속 이어질 경우 궁극적으로 푸틴의 국정 장악력이 빠르게 약화될 수 있어 계엄령을 택했을 수 있다고 WSJ는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