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진화생물학과 인류학, 그리고 미식학을 과감히 가로지르며 인간 진화와 생태, 역사의 관점에서 맛있음의 진화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두 저자는 향미를 좇는 본능이 진화를 이끌었다는 가설을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풍미의 세계, 인류가 최초로 불을 다루기 시작하던 시기, 또 현대의 수렵-채집인들과 현생 침팬지들의 식사 방식 등 여러 영역에서 살펴본다.
도구의 발명이라는 혁신
두 저자는 음식에 관해서 생존을 넘어 미식의 개념이 등장한 때보다도 훨씬 이전, 즉 인류 조상이 야생에서 무엇이든 먹을거리를 찾아 헤매던 바로 그 시절부터,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성이 자연선택과 진화를 이끌어왔다는 시각을 제시한다.
제1장에서 지난 수억 년간 미각 수용체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를 고찰하며 시작한다. 미각 수용체의 진화는 동물이 맛있는 것을 좇으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이끌었다. 여기에 더해 인류사에는 대략 600만 년 전에 도구의 발명이라는 혁신이 일어났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먹거리보다 더 달거나 더 풍미가 있거나 더 큰 즐거움을 주는 먹거리가 선택된 덕분이다. 더 맛있는 먹거리는 이후 진화적 변화들을 촉발한 도구의 출현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제2장에서는 이런 맛있는 먹거리로부터 얻은 영양분과 에너지가 인류 조상들의 진화 궤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펴본다. 먹거리를 도구로 자르거나 굽거나 발효시키면 더 많은 영양분과 에너지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뇌에는 충분한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뇌가 커지고 이족보행을 시작한 인류 조상들에게 또 중요했던 기관은 코였다. 제3장에서는 인류 조상들이 먹거리들을 인식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코와 향이 어떻게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를 논한다.
맛이 좋아서 멸종된 동물
여러 도구들을 활용하게 된 인류 조상들은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사냥도 더 많이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몇몇 종들을 너무 많이 사냥해서,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독특하던 동물 종들의 멸종에 일조하고 말았다. 그런데 인류 조상들은 어떤 동물들을 사냥하기로 선택했을까? 제4장에서는 이러한 선택에 향미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즉, 맛이 좋아서 멸종된 동물이 많았다는 것이다. 제5장에서는 고대 인류의 지나친 사냥으로 멸종된 동물들 때문에, 이러한 동물들을 자신의 종자를 퍼뜨리는 수단으로 삼아온 열매들이 어떤 진화 과정을 겪었는지를 살펴본다.
다음으로는 인간이 향신료와 발효를 요리에 활용하기 시작했을 때 코와 입으로 느끼는 향미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다룬다. 인간은 향신료, 발효와 관련된 영역에서 선택을 내릴 때 코와 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향신료 교역의 시작을 알리는 데에 일조한 것도 코와 입이었고(제6장), 맥주와 포도주, 발효 생선을 만드는 법을 깨닫게 해준 것도 코와 입이었다(제7장). 제8장에서는 더 쉽게 만들 수 있었는데도 굳이 복잡한 방법으로 치즈를 만들어온 베네딕토 수도승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했던 수도승들은 아무리 만들기 어렵더라도 더욱 맛있고 풍미가 강한 치즈를 기꺼이 만들어 먹었다. 마지막 제9장에서는 맛있는 음식들을 가운데에 두고 한자리에 모여서 즐기는 우리 인간만의 행위를 고찰한다.
수천 년간 인간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고 또 나눠 먹으면서 사회성을 기르고 지식을 나누며 세계를 이해해왔다. 수많은 과학자들의 최신 연구들과 요리사, 미식가들의 신선한 시각을 모두 담아낸 이 책은 ‘뉴 사이언티스트’ 올해의 과학책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