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러시아가 2014년 이후 20여개국의 정당, 관료, 정치인들에게 최소 3억달러(약 4179억원)를 은밀히 기부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선거를 좌우할 목적으로 수억 달러를 더 송금할 계획인 것으로 미 정보당국이 분석했다.
1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최근 정보당국의 분석결과를 요약한 내부 문서를 이날 공개하고, 러시아가 지난 8년간 20여개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선거를 흔들겠다는 목표로 최소 3억달러 이상의 정치후원금을 지급했고, 수억 달러를 더 송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무부 문서에는 "크렘린궁과 그 대리인들이 러시아에 유리한 외국의 정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이 자금을 송금했다"며 "미국은 러시아가 목표로 한 국가들과 공식 연락 채널을 활용해 그들의 정치적 환경을 겨냥한 러시아의 활동에 대한 기밀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미 국무부는 지난 12일 유럽, 아프리카, 남아시아에 있는 많은 재외 미국 대사관과 영사관에 보낸 외교 전문을 공개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민감(sensitive)'으로 표시돼 있지만 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이 문서에는 러시아의 다른 국가에 대한 정치 개입 의혹과 관련해 미국 외교관들이 주재국 정부와 제기하도록 지시받은 내용이 담겨 있었고, 외교관들은 제재, 여행 금지, 비밀자금의 노출 등을 권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에 대한 조사 결과는 미국 정보기관의 작업 결과"라고 확인했다. 그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사한 '주권에 대한 공격'"이라며 "전 세계 사람들이 자신들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표하며, 그들의 가치를 대표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정부를 선택하는 능력을 조금씩 깎아내리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서도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에게 유리하게 개입했다고 판단했다. 그 방법으로는 온라인 허위 정보를 퍼뜨리기 위한 사이버 작전 사용이 포함됐다. 미국 정보 당국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2020년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출마했을 때 바이든 후보에게 상처를 입히려는 캠페인도 승인했다.
국무부 문서에는 다양한 러시아 기관과 개인들이 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연방보안국과 다른 보안 기관들과 함께 전세계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러시아인들은 현금, 암호화폐, 전자자금 이체, 사치스러운 선물 등으로 지불하며, 자금의 조달출처를 밝히지 않기 위해 광범위한 기관을 통해 자금을 이동(세탁)하는데, 이러한 기관에는 재단, 싱크탱크, 조직범죄 단체, 정치 자문 기관, 러시아 국영 기업 등이 포함된다.
문서에 따르면 이 돈은 러시아 대사관 계좌와 자원을 통해 비밀리에 제공되기도 했다. 한 아시아 국가에서는 러시아 대사가 대통령 후보에게 수백만 달러의 현금을 건넸다고 이 문서는 밝혔지만, 한국이 포함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문서에 명시하지 않았다. 미국 기관들은 또한 러시아가 최근 몇 년 동안 몇몇 유럽 국가에서 허위 계약과 위장회사들을 이용해 정당들에게 자금을 제공한 사실을 발견했다.
국무부는 문서에서 "러시아의 은밀한 정치 자금 조달 방법 중 일부는 특히 특정 지역에서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는 중앙아메리카, 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과 특히 유럽 전역에서 활동하는 싱크탱크와 재단에 은밀히 자금을 이동하기 위해 국영기업과 대기업에 의존해 왔다"고 밝혔다.
문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 러시아 기업인이 극우 민족주의 정당을 지원하기 위해 유럽에서 친러시아 싱크탱크를 이용하려했다. 이 문서는 "앞으로 몇 달 안에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를 약화시키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비밀 정치 자금 조달을 포함한 '은밀한 영향력 도구 키트"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정보 기관은 수년간 러시아의 전 세계 선거 개입과 영향력을 조사해 왔지만, 정보 검토는 올 여름 고위 행정부 관리에 의해 지시됐다고 미국 관리들이 말했다. 일부 결과는 최근에 기밀 해제되어 널리 공유될 수 있었다.
미 국무부는 또 은밀한 자금조달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러시아 정보요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무부는 요약본에서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이러한 행동을 모방하는 것"에 대해 은밀한 정치 자금 조달을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미국 워싱턴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국무부 문건에 대한 입장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