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마, 아이시떼이마스 !”

2004.04.26 00:04:04

탤런트 배용준의 가운데 글자 ‘용’에 상대방을 호칭할 때 쓰는 극존칭 표현 ‘사마(樣)’를 합쳐 ‘용사마’를 외쳐대는 일본 팬들. 지금 일본열도는 이른바 ‘용사마 신드롬’으로 대표되는 한류열풍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왕일가에 붙이는 극존칭 ‘사마’
일본인들이 일왕일가에게나 붙임직한 ‘사마’를 외국 연예인에게 쓴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지금껏 해외 연예인에게 붙인 경우는 영국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이 유일하다.

그만큼 현재 배용준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후유노 소나타(겨울 소나타)’라는 타이틀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 때문으로 처음 NHK 자체 위성방송채널을 통해 방송됐다가 의외의 높은 시청률과 시청자들의 숱한 재방 요청으로 일본 전역을 커버하는 지상파를 통해 지난 3일부터 매주 토요일 방영되고 있다.

시청률 전문조사기관 비디오 리서치사의 조사에 따르면 ‘겨울연가’는 초반 시청률이 9.2%가 넘었다. 최근 4주간에 걸친 NHK의 같은 시간대 시청률이 3.4%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수치는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재방송인데 말이다.

팬들의 열광은 개봉이 임박한 영화 ‘스캔들’의 홍보 및 팬 이벤트 참석을 위해 배용준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최절정을 이뤘다. 4월3일 입국 공항인 하네다(羽田) 공항에는 공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약 5,000명의 인파가 몰렸고 배용준이 묵은 도쿄내 최고급 호텔 뉴오타니는 이례적으로 태극기를 게양하는 등 국빈급 대우로 그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하룻밤이라도 같은 호텔에서 자봤으면 하는 팬들의 열성 때문에 호텔객실은 순식간에 예약이 끝났고, 4일 도쿄 시부야 공회당에서 열린 팬 모임에는 수용인원이 2,000명인데 60,000명의 예약 신청이 밀려들었다. 열성팬들의 과열양상에 우려를 느낀 배용준은 급기야 “여러분, 제가 출국할 때는 공항에 나오지 마시고 제발 마음속으로만 배웅해 주세요”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출국 당일 4월8일에도 약600명의 팬들이 그가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공항에 또다시 운집했고, 각 스포츠지를 비롯해 주요 종합지 기자들의 취재경쟁도 치열했다. 한마디로 일본 전역이 5박6일간 배용준의 일거수일투족에 울고 웃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연가’ 마니아, 소나치안
현재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아 ‘소나치안’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겨울 소나타의 ‘소나타’에 사람을 나타내는 영어 접미사 ‘-ian’을 붙여 일본식 발음화한 것으로 드라마 ‘겨울연가’를 좋아하는 소위 마니아들을 의미한다. 이들 소나치안들은 한국말을 전혀 모르더라도 ‘배용준’이나 ‘최지우’의 이름은 비교적 정확히 발음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야후재팬(www.yahoo.co.jp)만 하더라도 일본어로 ‘배용준’을 입력하면 무려 15,000여건, ‘용사마’를 치면 4,800여건의 관련 사이트가 뜨고, 배용준의 방일기간 중에는 이른바 잘 나간다는 인기 인터넷 게시판에 거의 분단위로 용사마 관련 글들과 댓글들이 쏟아졌다. 소나치안들이 삼삼오오 모여 동호회를 만들거나 자체적으로 티셔츠 등을 제작, 용사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순애에 대한 갈증 해소
그런데 일본인들은 ‘겨울연가’에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우선 한일양국 상호 문화개방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됐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문제 등 민감한 정치, 역사적 문제가 양국간 문화적 교류의 발목을 잡곤 했으나 김대중 정권 이후부터 본격화된 문화개방정책에 힘입어 문화산업 인프라가 상당부분 구축됐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일본내 한류열풍도 해석 가능하다.

다음으로, 일본인들의 순애(純愛)에 대한 동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대표적 시사지인 아에라(AERA, 4월5일자)도 이와 같은 관점으로 일본내 ‘겨울연가 붐’을 설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빠른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그 결과 버블경제의 거품이 걷히면서 세계 제2의 경제대국답게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이코노믹 애니멀’로서 물질만을 추구한 탓인지 지금 일본내에서는 정신적 황폐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보다 순수하고 본질적인 그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고 ‘그 무언가’를 무조건적인 플라토닉러브, 즉 ‘순애’로 해석하고 있다. 결국 일본인들은 그토록 목말라하던 순애에 대한 갈망을 ‘겨울연가’라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배용준과 최지우를 통해, 그리고 ‘용사마 신드롬’을 통해 해갈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유행에 퍽이나 민감한 일본인지라 ‘용사마 신드롬’도 금방 사그라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반대 의견이 지배적이다. 왜냐하면 배용준의 뒤를 쫓는 일명 ‘용사마 옷카케(스타를 따라다니는 극성팬을 의미하는 일본어)’들의 대부분이 10~20대가 아니라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은 30~50대 중년 여성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60대 이상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여성들도 많다. 유행에 대한 심적 취향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심한 10대들과는 달리 이들 나이든 ‘소녀’들에게는 “한 번 용사마는 영원한 용사마”라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일양국간 우호증진 기여
중국이나 베트남,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불던 ‘한류열풍’이 그 방향을 틀어 일본에 상륙한 것은 현재 여러면에 있어 긍정적 측면이 많다. 그중 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차별을 받으면서 살고 있는 약 70만 명의 재일코리안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는 데 있다. 일례로 굴지의 일본계 은행에서 일하는 한 재일동포 3세는 취직문제 때문에 줄곧 한국명을 숨기고 일본명을 사용해 왔는데, 이번 ‘용사마 신드롬’에 용기를 얻어 일본인들에게 자신이 한국인임을 커밍아웃한 결과 일본인들이 상당히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또한 ‘겨울연가’ 인기를 계기로 자체 문화적 인프라가 탄탄한 일본에 본격적인 한국문화산업 진출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는 점도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미 수백억원대의 수익금이 발생했으며, 관련 서적 DVD 음반 등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일본의 여느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에 가더라도 한류스타들의 사진들이 즐비한 문화상품 코너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지금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음식(야키니쿠 김치 비빔밥) 스포츠(2002 한일월드컵) 음악(보아) 드라마(겨울연가) 등으로 지금까지는 한류의 맥이 어느 정도 잘 이어져 왔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문화산업뿐 아니라 일본내 한류열풍이 한일양국간 순수 우호증진과 문화적 교류확대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전환되는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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