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지구의 나이는 대략 몇 살일까?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워서 답을 알고 있다. 약 45억 살이다. 화석을 탐구하고 방사능 연대 측정을 활용해서 우리는 지구의 역사를 꽤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을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지구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이 책은 지구의 기원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17세기부터 시작한다. 그 당시 지구의 나이를 밝히는 것은 역사학자와 문헌학자, 연대학자들의 관심사였다. 지구의 나이를 문헌학을 통해 알 수 있다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게 가장 그럴듯한 접근이었다. 제임스 어셔는 여러 고전 문헌과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나이를 계산해 지구가 기원전 4004년에 탄생했다는 결과를 내놓는데,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툭하면 조롱받는 신세가 된다. 기원전 4004년이라니, 성경이라니, 현재의 상식으로는 어떻게 봐도 비과학적인 작업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틴 러드윅은 이를 정반대로 평가한다. 어셔 같은 17세기 역사학자들의 활동은 현대 세계에서 지구과학자들이 하는 작업과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어셔는 지구의 깊은 역사라는 현대적인 관념을 이해하기에 좋은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구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었지, 인간 세상과 마찬가지로 그것 고유의 역사를 갖는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구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이어간 역사학자, 문헌학자, 지질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지구과학자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지구가 지나온 시간들과 사건들의 흔적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지구의 시간을 밝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던 분야의 과학이 탄생하고 발전하며 성숙하는 모습을 그려낸 대서사시이기도 하다. <지구의 깊은 역사>는 한 가지 주제를 두고 다양한 이론이 경합하며 문제를 해결해내는 과정을 풍부한 자료를 제시하며 펼쳐 보인다. 이 책의 통해 독자들은 지구과학, 더 나아가서는 과학이라는 활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성립되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과학계에 몸담은 경험을 토대로 일찍부터 과학의 시각 문화에 주목해온 학자답게, 이 책에서도 많은 도표와 그림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지구과학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지구과학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지구과학이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됐던 역사학과 문헌학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며, 다양한 학문이 교차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지구과학은 엄청나게 다학제적인 분야다. 이 책에서는 지질학의 라이엘, 진화론의 다윈, 방사능 연대 측정의 퀴리, 대륙이동설의 베게너 등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와 업적이 비중 있게 소개되는데 그들의 이론이 어떻게 과학계의 승인을 받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주된 요소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정설이 된 이론들이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했다는 이유에서 기독교인들의 저항에 부딪혔고, 베게너의 대륙 이동설은 당시 학계의 중심으로 떠오르던 미국인이 내놓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미국인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과학은 과학이 아닌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사보다는 지성사라는 범주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