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이슈는 감정과 원칙과 이해관계의 문제다. 성장과 환경, 상대적 합리성과 절대적 가치의 상충 문제가 본질이다. 또한, 이 문제 속에는 생업과 사고로부터의 안전 문제가 걸려있다. 이에 더해 감정적 호소의 강도도 다른 어떤 이슈 못지않게 높다.
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원칙과 이해관계가 이처럼 복잡하고 첨예하게 뒤엉킨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하나?
국민여론조사 대신 ‘공론조사’를 택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문제
처음에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 호기 건설의 중단 혹은 건설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조사를 제안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과연 가능할까하는 반응을 보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공론조사의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건설을 중단하자’는 의견보다 6대4의 비율로 더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고 정부도 이 권고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만일 일부의 주장대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이 사안을 논의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여당은 탈원전의 원칙을 고수하며 건설중단을 옹호했을 것이다. 반면 야당은 경제논리를 강조하며 원자력 발전소 건설중단으로 인한 손실을 막아야 한다고 여당과 청와대의 논리를 반박할 것이다.
입법부의 표결이든 행정부의 결정이든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안이 아니었다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중단됐을 확률이 크다.
공론조사 -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활용해야
그런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471명의 공론조사 참가자들이 대통령의 공약과 다르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는 권고안을 내었다는 것이 그 하나이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이 결정에 흔쾌히 승복하고 수용했다는 사실이다.
놀라운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서로 간에 감정과 원칙과 이해관계가 이토록 첨예하게 뒤얽힌 문제가 불과 2개월 남짓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명쾌하게 해소된 보기 드문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공론조사가 만능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가 논의하고 결정하여야 할 중요한 사안을 공론조사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공론조사를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대의민주주의와 공론조사를 접목할 수는 없을까?
만일 국회가 권력구조나 선거제도의 개편과 같이 각 정파의 감정과 원칙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하여 공론조사를 통하여 합리적 숙의과정을 거친 진짜 민심을 경청하는 기회를 갖는다면 당리당략을 넘어선 좀 더 생산적인 정치발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신고리 공론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돌이켜보면 공론조사를 대의민주주의의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서 더 많은 사안에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