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법원의 ‘재벌의 법칙’이 아직도 유효함을 드러냈다.
재판과정에서 드러난 것만 20대 비서 성추행 29차례, 가사도우미 성폭행과 성추행 13차례를 저지른 김준기(76) 전 DB그룹 회장의 얘기다.
최근의 ‘n번 방 사건’으로 성범죄에 대한 들끓는 여론은 딴 세상 얘기처럼 들린다.
김 전 회장은 지난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별장의 가사도우미를 성폭행하거나 비서 등을 강제로 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의 범행을 거부할 경우 불이익이 염려돼 거부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었고, 김 전 회장이 이 같은 지위를 이용해 위력으로 간음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17년 7월 질병 치료 명목으로 미국으로 떠났다가 출국 이후 성추행 의혹이 불거져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곧장 국내로 돌아오지는 않아 약 2년 동안 수사가 진척되지 못했다.
사실상 도피행각을 벌이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0월 22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서 귀국했다. 출국한 지 약 2년 2개월 만으로 김 전 회장은 공항에서 바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고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6단독 이준민 판사는 지난 17일 피감독자간음 및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김 전 회장은 석방됐다.
이 판사는 부가적으로 취업할 일도 딱히 없어 보이는 76세인 재벌 김 전 회장에게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40시간과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장애인 복지시설 각 5년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높고 ▲성추행, 성추행 또는 성폭행 사실을 인정했으며 ▲지시 복종 관계와 피해자의 약자적 위치 ▲범행 후 2년간 해외 도피 정황 등을 모두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합의와 75세라는 나이만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재벌 피고인답게 변호인만 5차례 교체했다.
당장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이경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75세의 고령이라며 구속 상태에서 풀어줬는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대변인은 "75세의 고령이라는 김 전 회장의 드러난 혐의는 20대 비서 성추행 29차례, 가사도우미 성폭행과 성추행 13차례"라며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지시에 순종해야 하는 관계를 악용해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죄질이 좋지 않다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사를 n번방 사건에서 교체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40만 명을 돌파했다"며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항소 여부가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