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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시대

타인과 정부 신뢰도 바닥수준... 국가 경쟁력 위협

정춘옥 기자  2016.11.07 15: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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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국민의 분노와 불신이 위험수위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의지할 곳 없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해졌고 ‘규칙과 권위에 순응하는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회의’도 커졌다. 이미 추락한 국가에 대한 신뢰는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이르러 붕괴 수준에 이르렀다.


공공성 OECD 최하위권


한국은 11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 국가다. ‘헬조선’이란 자조에 반박하는 국민도 점차 적어지고 있다. 전쟁 중인 국가도 아니고, 배를 곯는 가난한 국가도 아닌데 왜 불행은 일상화 돼 있을까?


지난 10월 발표한 OECD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불신의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26%로, 회원국 평균보다 10%포인트나 낮다. 정부 신뢰도는 0.28이다. 조사 대상 35개국 가운데 29위로 바닥 수준이다. 사법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35개국 중 34위다. 덴마크가 74.9%로 사회신뢰도 순위가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은 노르웨이 72.9%(2위), 네덜란드 67.4%(3위) 순이었다.


한국은 각종 비슷한 조사에서 항상 하위권을 차지해왔다. 공정과 공익 등을 중시하는 ‘공공성’에서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사회규범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OECD 22개국 중 5번째로 많았다.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있는가, 기부 활동을 하는가 등 사회적 네트워크에 관한 질문에서 긍정적 답변수가 거의 꼴찌를 기록하며 늘 행복도가 높은 국가, 혹은 선진국의 반대편에 있다.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 국가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안정된 삶을 방해한다. 우정이나 이웃과의 연대감 등 신뢰 깊은 네트워크는 선진국의 각종 설문조사에서 행복의 조건 1, 2위에 항상 손꼽히는 항목이다. 타인과 사회를 신뢰하고 소통하며 의지하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기준이라면 한국 사회의 불행은 이 기준 조차 없다는 것이다. 물질이 행복의 조건인줄 알고 쫓지만 마음은 공허하다는 사실이 각종 수치에서도 이처럼 입증되고 있다.


경쟁·성공만 있고, 평등·연대 없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가치관은 경쟁 성공 우선주의와 낮은 관용도를 나타냈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공공성이 높은 국가일수록 관용도가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이 가치관에는 경쟁과 성공 물질만 가득하고 평등 정의 연대는 희박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각자도생 물질주의에 빠진 한국사회는 이후도 일련의 불신감을 높이는 사태를 경험하면서 이 같은 가치관을 강화시키고 있다. 기득권이 강화되고 빈부격차, 갑을관계가 심각해지면서 국가 시스템도 기득권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을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내 가족을 챙기기도 버겁다’는 각자도생 가치관은 ‘나 혼자 살기도 벅차다’는 것으로 한 차원 심화됐다. ‘사기친 사람보다 당한 사람이 문제’ ‘새벽에 술 마시고 짧은 치마입고 다녔으니 성범죄에 대한 책임이 피해자에게도 있다’ 등의 비상식적인 논리가 만연한 이유도 이처럼 각자도생이 하나의 법칙으로 군림하는 사회라면 설명이 가능하다. ‘헬조선’은 결코 청춘들의 엄살이 아닌 것이다.


대부분 선진국은 물질주의에서 탈물질주의로 간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규모에 비해 가치관이 역행하고 있다. 경쟁위주의 가치관이 오히려 국가경쟁력에 걸림돌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 3대 사회적 자본의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보고서를 내놓아서 눈길을 끌었다. ‘신뢰’의 자본을 북유럽 수준만 쌓아도 4%대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신(信)성장론이다.


“신뢰 높이면 4%대 경제성장 가능”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실태와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는 ‘한국경제 선진국 도약의 결핍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을 신(新)성장동력으로 활용해 한국경제의 저성장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가 서울대 김병연 교수팀의 자문을 받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재 27%인 한국의 사회신뢰도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수준(69.9%)으로 향상되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상승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信)성장동력만 잘 쌓아도 현재 2% 후반 성장률이 4%대로 도약할 수 있다는 논리다.


보고서는 경제 주체간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사회규범’과 ‘사회네트워크’ 확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 규범의 작동은 신뢰제고의 필요조건 이지만 한국의 사회규범지수는 100점 만점에 86.6점(17위)으로 조사대상평균(88.2점)에 미달하는 수준이다. 사회네트워크 또한 심각하게 낮은 수준인데 보고서는 사회네트워크가 활성화될수록 일자리와 투자 등 경제활동기회도 증가한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자본축적의 열쇠로는 ‘소통’을 제시했다. 불신은 갈등을 낳고 각종 정책의 발목을 잡는다. 보고서는 기업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윤리규범을 만들어 책임경영의 관행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지속가능성장, 사회복지 확대 등 사회문제 해결에도 관심과 참여를 넓혀야 국민적 지원이 뒤따를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자본과 노동 같은 경제적 자본만으로는 성장판이 갈수록 닫히는 것을 막기 어렵다”면서 “신뢰와 규범 같은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 경제활동의 새로운 기회가 활발하게 창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