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6) - 북한산 '숨은벽'

2021.05.31 14:32:28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북한산 ‘숨은벽’이다. 숨은벽은 북한산 정상의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숨어있는 암벽이라는 뜻으로, 북쪽에서만 바라보아야 보인다고 하여 ‘숨은벽’이라 불린다. 


지난번 동기 산행의 숨은벽 산행을 금산 여행으로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고, 지난 주말 내내 내린 비로 산행을 하지 못해 초파일 부처님의 가피로 쉬는 날, 숨은벽 산행을 계획하였다. 언제 찾아가도 명산인 북한산, 그중에서도 숨은 매력을 보여주는 숨은벽 코스는 북한산이 간직한 가장 은밀한 비경이 아닐까 한다.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구파발에서 버스로 갈아타 효자 2동 정류장에 내린다. 이른 아침인데도 북한산성 입구 정류장에서 많은 등산객이 내리고, 효자 2동에는 나 혼자 내려 국사당 숲길로 들어가니 자가용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등산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접근성이 불편한 숨은벽 코스는 숨은벽 능선을 탄 후, 백운대를 오르지 않고 원시림에 가까운 밤 골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원점회귀도 가능하다. ‘밤골공원 지킴 터’를 지나며 오르는 산길은 평범한 숲길이다. 지난 주말 내내 내린 비로 보이지는 않지만, 밤 골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숲은 초여름 아침의 싱그러운 바람과 그 속에 묻어오는 향긋한 아카시아 향이 너무 달콤하다. 산길을 따라 산사나무 꽃이며 붉은병꽃나무 꽃, 한국 토종이라는 일명 ‘미스김 라일락’도 피었다. 


오르는 도중의 길가에는 솜사탕 같은 노린재나무 꽃도 피고 잎에는 무슨 나비의 애벌레인지 생명이 반짝이고 있다. 왼쪽으로는 깊은 계곡이 검푸른 빛으로 녹음을 빛내고 있다. 


사기막골이다. 예전에는 울창한 숲을 이용해 사기를 구워 팔았기에 사기막골이라는 지명이 붙었을, 북한산에서도 보기 드문 깊은 골짜기가 넓게 펼쳐져 있다.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숲으로 들어가니 경사가 가파르기 시작하며 물소리도 그쳤다. 헉헉거리며 오르는 암석 길을 비켜서 주며 내려오는 젊은 남녀가 있어, 몇 시에 왔길래 벌써 하산길이냐고 물었더니 새벽 두 시에 산행을 시작했단다.

 

허! 산행을 얼마나 좋아하면 새벽부터. 요즘 청춘의 힘이라는 건 내가 청춘일 때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드디어 해골 바위가 있는 암벽 모퉁이를 돌아 오르자 눈앞에 숨은벽이 나타났다. 


오른 암벽 저 아래에는 정말 해골을 닮은 바위가 보이고 맞은편 노고산도 환히 보인다. 남으로는 백운대 북쪽의 깎아지른 절벽이 숨이 탁 막힐 정도의 장엄함으로 우뚝 서 있고, 그 옆의 인수봉 암벽과 나란히, 살포시 숨은벽이 자태를 나타내고 있다. 명불허전! 북한산의 내밀한 비경은 그렇게 올해도 내게로 왔다.


여기서부터는 오르는 길 굽이 굽이가 감탄이다. 같은 곳인데도 바라보는 위치가 조금 달라졌다고 이렇게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절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오르다 보니 절벽이 꺾였다. 단층 같은 바위틈을 거의 수직으로 내려오는 아슬함을 경험한 후, 다시 인수봉을 향한 깔딱 고개의 고난 행군이다. 계곡의 숲 한옆으로는 바위취가 연약한 꽃잎을 보이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인터넷의 덕분으로 요즘은 숲을 가다가 모르는 꽃을 만나면 사진을 찍고 검색을 하다 보니 제법 아는 꽃들이 늘었다. 세상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더니 봄부터 가을까지는 이름 모를 꽃 검색도 하며 숲을 느끼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나씩 알아가는 만큼 산행하는 즐거움이 하나가 더 늘었다.

 

그렇게 힘든 고개를 오르다 보니 바위 밑에 샘물이 솟는 옹달샘이 있다. 고개 오르는 수고를 한 방에 날려주는 옹달샘에서의 휴식 후, 힘을 내어 깔딱 고개의 끝까지 힘내어 올랐다.


고개 넘어 남쪽은 햇살 좋은 풍경으로, 위문부터 백운대 정상까지는 등산객이 북적인다. 언제나 인수봉에 올 때는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데 오늘은 일찍부터 등산객이 많다고 위문 탐방 센터의 직원이 일러준다. 북한산의 백미 백운대를 오르며 보이는 경관 또한 포기할 수 없는 북한산 등산의 맛이다.

 

과연 정상에는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정상에 올라 백운대 태극기에서 인증-샷을 찍기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아래의 너른 바위에 않아 가져온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는다. 오늘따라 젊은 등산객이 많아 주위가 약간 산만하다. 


젊은 친구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얼마 전에 읽었던 오찬호 작가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그 책에서는 청춘들은 “평생을 학습능력 하나로 단죄받고 사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를 문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학력차별을 확대재생산 하는데 더 열심이고, 자기 개발서를 인생 최고의 경전인 듯 떠받들며, 사소한 경쟁우위를 위해 어떠한 차별도 서슴치 않는 걸 공정”이라고까지 여기는 요즘 이십대 청춘들의 의식을 분석한 책이다. 


대학을 다니며 남들과 경쟁하다 보니 생기는 스트레스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특성이 생기고 스스로가 차별을 부추기는 특성이 생겼다고 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어쨌든 모든 건 자기 할  탓이라는 자기계발 논리에 철저히 길들어진 결과로, 주관적이어야 할 고통의 비교 법칙이 이십대를 통제한다. 자기계발은 자신의 고통도 늘 스스로  참아야 하는 것으로 강요되는데,  남의 고통까지 왜 신경을 써줘야 하는가 하며, ‘나’ 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그만큼 ‘덜’ 대우받아야 한다. 


그렇게 ‘엄격한 시간 관리’만이라도 평가받길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 찬스’ ‘아빠 찬스’에 그렇게 분노하고 스펙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부모의 덕으로 결정되는 세상에 분노한다. 그래서 김경집 교수는 “다음 세대가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 죄는 전적으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그런 반성이 먼저이어야 한다.”며 우리 세대의 반성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나를 바꾸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이득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인류는 세상을 바꾸면서 진보해 왔다는 것을”이라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세상이 원래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걸 미리 알아버린 세대인 것 같아 마음이 어둡다.


하산을 대동사로 가는 짧은 고갯길을 택해 급경사를 내려오니, 아직 오전이라 오르는 등산객이 많다. 힘들어하며 오르는 모습들을 보며 그래도 정상의 경관은 그 힘든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 주리라는 믿음에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는데, 이십대의 앳돼 보이는 청춘이 비켜서 있는 나를 힘든 듯이 올려다보더니, “거의 다 왔지요?” 하며 씩 하고 밝게 웃는다. 나도 웃으며 “거의 다 왔어요” 하며 하얀 거짓말로 대답한다. 우리 세대가 만든 팍팍한 세상에도 젊은 세대는 이렇게 땀 흘리며 나름대로 ‘노오력’을 하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내려가다 들른 대동사 대웅전에서, 새벽부터 등산에 나선 젊은 청춘과 힘든 고갯길에 나를 보고 밝게 웃던 청춘들의 세상이 오늘만큼은 부처님의 가피로 그들의 ‘노오력’이 충분히 보상받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했다. 


원효대사가 말했다던가? 현재를 바라보는 대통을 치우라고. 대통 없이 바라보면 넓은 세상을 굳이 좁은 대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특히 이십대의 대통은 심각하다. 대통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청춘이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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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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