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23) - 도봉산

2021.04.19 14:14:45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일명 ‘불수사도북’으로 불리는 강북 5 산 중의 하나인 도봉산이다.
서울 서쪽에 주로 살고 있어서 동북쪽 산에는 가까이 갈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동기 산행모임이 이번 주 산행을 도봉산으로 정하여, 쉽지 않은 기회로 모임 장소인 도봉산역까지 한 시간 반의 전철 길도 멀다 않고 나섰다.


11시 집합 시간의 도봉산 입구는 등산객으로 인산인해다. 전철역에서 도봉산 국립공원 입구까지는 등산용품 상점과 식당 등으로 통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복잡한 상점가를 지나 도봉산 탐방센터 입구에 선다. 입구에 있는 광륜사 절 앞에서 구한말 정치사에 큰 영향을 끼친 조대비 신정왕후의 별장터였다는 안내판도 보며 산행 준비를 다시 점검하고, 사람들이 많은 도봉계곡을 피해 한적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산악 대장에 의하면 둘레길로 진행하다가 다락 능선을 따라 해골 바위를 거쳐 포대 정상과 와이 계곡을 지나 신선대에 오르는 코스에 대한 설명이 따른다.


한적한 길임에도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주말마다 내린 비의 영향인지 초록은 이미 푸르고 앙증맞은 새싹들의 연두 초록빛 향연이 싱그럽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청량하다. 봄의 전경을 따라 부부산행과 친구 산행이 숲속에 자리 잡고 점심을 먹는 모습도 정겹다. 차로 지나다니며 바라보던 것보다는 의외로 숲 공간이 넓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많던 초입의 사람들이 하나둘 터를 잡고 앉으니 높이 오를수록 길은 호젓해진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우이동 계곡이 그렇게 유명한 게 이해가 간다. 다락 능선으로 올라 암벽 사이를 오르면서 바라보는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경치는 절경이다. 구비 마다 바뀐 위치에서 바라보는 도봉 삼봉의 거대함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경탄하며 오르는 산행 또한 등산의 묘미가 아닌가.


망월사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곳에서 자리를 잡고 가져온 점심을 먹는다. 해골 바위도 보이고 높은 곳의 초록에 묻힌 망월사 전경이 티벳 어느 곳의 사원처럼 신비롭게도 보인다.


젊은 날엔 많은 것을 갈망하고 그것을 거머쥐면 행복할 거라 믿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무엇을 더 가진다고 삶이 풍성해지진 않았다. 외려 치열한 삶에서 멀어진 지금 많은 걸 포기함으로써 삶은 풍성해진다는 것을 안다. 욕심을 덜어내고 어리석은 일을 피하며 소박한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 이렇게 친구들과 산에서 점심을 먹으며 바라보는 망월사의 전경, 이것이 행복이다.

 

혼자만 불행을 피하려고  전전긍긍하고,  혼자만 행복해지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은 비루한 것이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 집사람과 친구들과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마주하는 지금 이 순간 일상의 이 작은 기쁨, 공기, 빛, 시간조차도 감사하고 싶다.


다시 오르는 다락 능선은 험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도봉 삼봉의 거대함과 그 밑에서 매달려서 암벽을 타고 등반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래와는 또 다른 세계, 암벽의 세계를 나는 모른다. 그 아슬아슬한 또 다른 삶을 즐기는 사람들을 옆으로 하고 드디어 오른 곳은 포대 정상. 화창한 하늘을 마주하고 사진 한 장 찍는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持續)되기를 바라면서.


등산 대장의 계획대로 오른 포대 정상은 주말에는 일방통행의 와이 계곡을 통과하기 위해서란다. 그 말로만 듣던 와이 계곡. 입구에 도착하니, 한 무리 아주머니들이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안내에 돌아서고 있단다. 그래도 올라오신 포대 정상이니 안 가보셨으면 꼭 한번 경험해 볼 만 한 곳이라 강력추천하며 같이 통과, 지나보니 정말 잘했다는 감사의 인사도 들었다. 데크 길이 깔려 안전하다고 들었는데 와 보니 데크를 설치할 수가 없는 험한 통로다.


바로 앞의 자운봉을 보며 내려가 다시 그 옆의 신선대를 오른다. 자운봉을 오를 수 없으니 오를 수 있는 신선대에 올라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을 바라보며 정상의 성취감을 맛본다.


오늘은 몇 주 전, 송추 계곡을 따라 오봉 방면에서 올 때보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그리 붐비지 않고 올랐다. 주말에는 신선대 오르기가 정체 구간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붐비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산이다. 정상에 선 사람은 스스로 내려갈 줄을 알아야 한다.


자운봉 밑으로 난 계단 길을 따라 다시 마당바위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심하다. 오르는 수고에 비하면 내려가는 것은 수월하니 안전에 유의하라는 산악 대장의 당부를 따라 천천히 하산한다. 수십 년 산 사나이로 살아온 산악 대장의 세심한 안내는 언제나 산행모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급경사를 내려오다 마당바위를 지나면서는 다시 완만한 숲속의 호젓한 산길이다.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 것이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산을 느낄 수 없다. 험한 바위를 지나 정상에 설 때는 호연지기를 느끼지만, 역시 산은 산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초록과 그늘은 우리를 위한 것. 살아 있는 건 다 눈부시다.  산벚나무, 복사꽃, 진달래, 산 목련 등과 이름 모를 꽃들이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자라고 있는 모든 모습. 돌보는 이 없어도 때가 되면 알아서 잘 자라는 건 눈물이 날 만큼 고맙다.


한참을 내려온 개울가의 흐르는 물이 맑다. 맑은 개울물에 벚꽃잎이 한가득 담긴 곳도 있다. 산행에 힘든 발을 개울물에 담그니 머리가 깨질 듯 정신이 번쩍 난다. 벚꽃잎 웅덩이는 발의 피곤함을 포근히 풀어주며 거친 산행의 수고를 덜어준다.


아! 산행의 피곤함이 저만치 물러간다.
다시 힘을 내어 내려오는 길, 구봉사 절 옆의 복숭아 꽃이 너무 화사하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에 복사꽃이 만개한다더니 이곳이 무릉도원인가 싶다.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다시 하산하는 등산객이 많아지고, 앞서가는 사람이 이번 서울 시장 선거결과 이야기로 시끄럽다. 난 서울 시민이 아니니 큰 관심이 없으나 관념의 차이는 참 큰 것 같다.


사람들은 세상이 합리적이며 삶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환상이다. 삶은 공정하지 않으며 세상에는 부조리가 널려있다. 그 부조리하며 불공정한 세상에서 누구도 남이 아닌 나를 살아가는 것이며 또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 삶에서 일 하나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있겠지만, 인간과 인생 전체를 놓고 그 시비를 가리기란 어렵다.


또한 지나간 일의 진위를 가리는 일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가 어찌 가벼이 입에 올릴 수 있겠는가.


존 스튜어트 밀이 갈파한 것과 같이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방식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오늘은 산이 내게 그리스 로마 신화의 강도(强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사람을 잡으면 자기 침대로 데려가 침대보다 크면 자르고, 작으면 늘려 죽였다는 노상강도, 자기 생각에 맞추어 남의 생각을 뜯어고치려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 우리는 내가 옳다며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횡포를 일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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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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