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칼럼】 정치가 주무르는 법치

2020.12.16 11:03:02

[ 시사뉴스 강영환 칼럼니스트 ]  1994년 미국의 전설적인 미식축구선수 OJ 심슨이 살인죄로 기소된다. 그는 영화배우, 방송인으로 떼돈을 벌고 백인 금발 미녀와 결혼해 흑인 사회의 우상이 되었다. 그런 심슨이 자기 부인과 그녀의 남자 친구를 무자비하게 죽였다.

 

세기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된 형사 소송의 결과, 배심원단은 무죄를 평결했다. 범행 도구로 여겨질만한 장갑, 혈흔 등 증거들이 많았음에도 말이다. 초호화급 변호인단이 일군 유전무죄(有錢無罪)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살인 사건을 대상으로 한 1997년의 민사 소송에서 심슨은 유죄 평결을 받는다. 33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배상 책임을 물게 된다. 피해자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 중 지속적이고 극심한 학대와 괴롭힘이 있어 억울하게 죽었다는 혐의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형사와 민사가 이렇게 정반대가 나왔다. 이렇게 OJ 심슨사건은 전대미문의 유전무죄 판결로 역사의 한페이지에 장식되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역시 헌정사상 최초로 정직 2개월의 중징계가 실제 내려졌다. 워낙 오랜시간을 끌어온 데다 이젠 돌아설 곳이 없는 클라이막스이기에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마저도 대한민국에 산다면 거의 알만한 사건이 되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에 항거하며 직급상하 없이 대부분의 검사들이 들고 일어섰다. 사표도 여럿 쓰고, 감찰을 수행했던 검사의 양심선언도 나왔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가까운 이도, 법무부 검사들도 직무정지에 저항했다. 검찰 외부인사가 다수인 법무부 감찰위원회도 직무정지 철회를 요청했다. 거기에 마침내 사법부도 직무정지 효력의 정지를 결정했다. 

 

그런데 추 장관은 윤 총장 징계위원회를 강행했다. 당초 2일에서 4일로, 그리고 10일로 두번 연기되어 첫 징계위원회를 열고, 15일 두번째 회의를 끝으로 징계결정의 절차를 끝냈다.

 

징계청구자인 법무부장관의 징계위원회 소집, 징계위원 정보제공거부, 편향적인 징계위원구성, 징계자료 제공 늑장이 이어지고, 윤 총장측의 징계 위원 기피 기각, 예비위원 충원거부, 충분한 시간요청 거부 등 공정성과 절차적 타당성엔 성벽을 쌓아놓고 진행된 징계위원회였으니 그 결과는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윤 총장 측은 속전속결로 징계절차를 끝낸 징계위원회에 대해 “법무부가 이미 중징계 결론을 정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추 장관이 당사자이기에 들어갈 수 없었던 위원회이지만, 징계위원들 모두가 친(親)추장관 인사들이기에 추 장관의 지시를 대행할 것이고 그 뒤엔 '대통령의 의중'이 담길 것이라 법조계와 언론이 예상했었다. 결국 법이 아니라 정치에 의한 결론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징계반대의 국민 여론과 돌아올 역풍에 겁은 단단히 먹은 듯, 최고의 중징계인 해임을 피해간 것을 보니 징계수위에도 정치가 보인다.

 

이렇게 법원도 인정하는 법조계 전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내용적으론 문제가 없는 일종의 무죄 사건에 대해 장관과 그 뜻을 따르는 아주 소수의 결정권자들이 중징계의 혹독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대통령은 이 과정을 묵인했고 결과에 재가만 남아있다.

 

권력의 힘을 이용한 정치가 법치를 제압했다. 검찰총장의 손발을 묶어놓고, 정치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헤치고 권력에 길들여지기를 강요받는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검찰개혁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으로 전혀 개혁스럽지 않은,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반(反)법치의 작태로 벌어진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사건>은 OJ심슨 사건 처럼 전대미문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윤 총장은 결국 징계를 받은 <무권유죄(無權有罪)>의 죄인 아닌 죄인이 되었다. 그가 무죄를 다시 되찾으려면 <유권무죄(有權無罪)>, 즉 권력을 갖는 길밖에 없다.

 

비록 권력을 지닌 세력이 '법치를 제압하는 이 비열한 정치의 추태'를 얼마만큼 동안이나 봉합할진 모르겠지만, 역사는 언젠가는 다시 이 사건을 불러낼 것이다. 마치 40년이 지난 오늘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재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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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환 bridge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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