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⑫ - 관악산

2020.12.11 14:21:36

 

[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  오늘은 관악산이다.

​3개월여만의 관악산 산행이다. “관악산 등반. 오후 1시 사당역 집합, 하산 후 뒤풀이 생략”.

카톡 통신에 들어온 금주의 산행 공지에 집에서도 멀어 선뜻 가고 싶진 않았지만, 코로나로 찌든 마음을 풀기에는 산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과, 일상 같지 않은 일상의 갑갑함을 피해 한 시간여의 전철 길을 멀다 않고 나선다.

 

오랜만의 사당역은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20대, 40대, 또는 우리 같은 60대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동료나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단계도 곧 2.5 단계로 상향될 것이라는 전망인데도 아직은 친구들과 만나고 접촉하고 함께 산행하는 것이 더 인간답게 느껴지는 거다. 그렇게 사당동 전철역 앞은 관악산 산행을 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코로나 이전의 일상과 과히 다르지 않은 모습, 그러나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정부에서는 비대면 접촉을 강조하지만, 비대면의 가상 세계는 과연 우리에게 이상적인가?. 신경 과학자들은 전자기기 중독이 인간 뇌의 신경 세포를 '재배선(rewiring)'하여 주의 집중 시간을 대폭 감소시키고 수면의 질을 떨어트린다고 한다.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들어 주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소통시켜 줄 것 같았던 통신 기기들이 실제로는 우리의 마음을 더 산만하게 만들고 있듯이. 비대면 접촉이 코로나 상황에서 최적의 방법은 아닐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든다.

 

기다리던 친구들이 도착하자 산에서 마실 음료수와 약간의 간식을 확보하여 산으로 출발한다. 오늘은 7명, 그래도 꾸준히 산행을 같이하는 친구들이 있어 즐겁다.

 

주택가를 지나, 관악산 둘레길의 산길에 접어든 산행은 언제나처럼, 관음사 옆을 지나 선유천 약수터를 향해 오른다. 오르는 길은 능선을 향하니 돌계단이 끝없는 것 같지만 능선을 오르면, 헬기장부터는 그래도 산행이 쉬워진다. 오르는 숲길은 어느덧 나무들이 그 푸르던 초록의 나뭇잎을 모두 벗고 낙엽이 되어 떨어졌다. 나무의 생존 전략에는 가을 낙엽이 되기 전에 잎의 질소와 칼륨, 인산의 60% 이상을 목질부로 재흡수 시켜 생존에 필요한 요소들을 지킨다고 하니, 나무의 생존 전략도 오랜 진화의 오묘한 방식이리라.

 

힘겹게 오르는 길에서 만나는 풍경은 내게 말을 건다. 나는 풍경이 건네는 말에 상념으로 대답한다. 풍경과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이 교류는 일종의 대화이다. 그렇지만 나무가 휴식에 들어간 듯한 허허로운 상황에서는 그다지 대화가 원만치 않다. 그 대신 같이 가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더욱 정겨움을 더한다.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들에 가끔은 웃음 짓기도 가끔은 심각히 듣기도 하지만 함께하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

 

그저 매주 만나 같이 땀 흘리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아픔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오늘의 삶이 좋다. 프랑수와 클로르의 소설 '쿠뻬씨의 행복 여행'에 나오는 배움 4의 '행복은 가보지 않은 산속을 걷는 것이다' 처럼 말이다.

 

겨우 도착한 선유천 약수터의 물은 말라 있다. 약수터에서 약간 휴식을 취하고 국기봉에 올라 사진을 찍는다. 새로 바꾼 친구의 스마트폰 사진이 움직인다. 국기가 펄럭이기도 하고, 얼굴이 좌에서 우로 움직이기도 하고, 사진의 진화에 모두 함께 놀라 웃으며 기술의 진보에 경탄하기도 하고. 그런 기술이 우리 마음을 정말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의문도 가져본다.

 

국기봉을 지나 마당바위로 향한다. 저 멀리 보이는 관악산 정상의 통신탑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한데 웬일인지 친구들의 발걸음이 서두르지 않는다. 겨우 다다른 마당바위에서도 사진을 찍으며 한참을 휴식, ‘관악문’ 바위를 조금 앞두고 오늘은 산행을 고만 접고 휴식하다 돌아가자고 한다.

 

해도 일찍 떨어지니 연주대를 돌아 내려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단다. 허!, 참!. 산행이 정상을 올라야만 맛이더냐.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인생이 거의 없듯이, 우리의 삶 또한 바뀌면 바뀐 환경에 맞춰 적응하며 사는 것이 맞는 이치다.

 

등산길을 비켜 한옆에 자리를 잡고 가져간 음료수와 간식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60년 넘게 살아온 인생들이라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구수하기 그지없다. 가져간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한 시간여의 담소로 웃고 즐기니 4시가 넘었다.

 

서둘러 하산을 위해 돌아온 길로 되돌아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온 길을 다시 가기에는 재미가 덜하던 차에 샛길이 보인다. 마당바위를 조금 지나 샛길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마당바위 약수터라는 팻말이 나오고 낙엽에 쌓인 오솔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무수히 쌓인 낙엽길. 나무가 살기 위해 떨어뜨린 낙엽들이 계절의 쓸쓸함과 겹쳐 죽음으로 보인다.

 

스산하게 낙엽을 떨구고 서 있는 나목들의 풍경이 건네는 말에 내 상념은 죽음의 개별성을 강조한 김훈 선생의 말로 대답한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만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또 미국 ‘바바라 엘런라이크’는 ‘건강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죽기에 충분한 나이가 됐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성취이며,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유는 충분히 축하할 가치가 있다”며 자연적 생사윤회는 패배가 아니라며 인간의 지나친 생명 연장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고 고발하고 있지 않은가.

 

마치, 영화 ‘은교’의 여고생을 사랑한 노인역의 박해일의 유명한 명대사와 같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해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 또한 나의 잘못으로 인한 벌이 아니다 ".

 

산은 우리에게 봄의 싱그러움과 가을의 낙엽을 보여 주듯이 또 그렇게 세월의 윤회와 일상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다.

저 아래 세상에서는 비대면을 그렇게 강조하지만, 함께 산행하는 친구들과의 오늘 하루 산행이 소중히 느껴지는 것은 매주 만나 산행하는 일상이 주는 행복이기 때문이리라.

 

누구의 말인지 기억에 없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셀 수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주택의 가격은 셀 수 있지만, 가정의 행복은 셀 수 없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서점에서 10달러를 주고 살 수 있지만, 그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했듯이 일상 속의 의미는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나이가 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일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지속적인 행복에 가까워지는 삶의 방식이다. 행복이란 햇빛이나 공기처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 아닌 것처럼.

 

내려온 하산길은 서울대 뒷문 연구동 쪽이었다. 함께한 친구들이 있어 더욱 소중한 하루였다.

가는 길에 주막에서 혼자라도 시큼털털한 막걸리 한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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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욱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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