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으로 ‘정’을 나누는 인생의 참맛 <밥정>

2020.10.12 16:04:11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의 인간미 넘치는 요리와 사계절의 풍광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가 생이별한 친어머니, 가슴으로 기르신 양어머니, 긴 시간 인연을 맺은 길 위의 어머니를 위해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으로 눌러 담아 정성껏 차린 한상차림, 10년의 여정 속에서 우러나는 인생의 참맛을 그린 작품이다. 핫독스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초청을 비롯해 국내외 14개 영화제에 초청됐다.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을 눌러 담은

 

주변 자연을 재료로, 자연 자체에서 영감을 받아 즉흥적으로 요리를 창조하는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의 삶과 요리에 담긴 철학을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10년에 걸쳐 담아냈다. 그가 세계적인 요리사이자 자연요리연구가가 된 배경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다. 얼굴조차 모르는 친어머니, 임종을 못 지킨 양어머니의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임지호 셰프는 어쩌면 만났을지도 모를 어머니를 생각하며 길에서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음식을 대접했다. 


전국을 떠돌며 식재료를 채취하던 임 셰프는 지리산에서 김순규 할머니를 처음 만났다. 소박하지만 풍성한 마음이 담긴 냉이 된장국을 끓여준 김순규 할머니에게서 그리운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 임 셰프는 모자의 인연을 맺고 10년의 정을 쌓아간다. 그러나 세상에 하나 남은 길 위의 어머니 김순규 할머니와도 이별하게 되고 세 명의 어머니를 위해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을 눌러 담은 한상차림을 결심하게 된다.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요리를 만들어내고 대청마루에는 108가지 음식으로 가득 채워진다. 관객들에게 마음의 치유까지 가져다 줄 이 접시들 중 전과 과일, 나물과 생선 등 실제 음식이 담긴 접시는 103개다. 나머지 5개는 무형의 접시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자세를 담았다. 허영심을 버리는 것, 거짓말하지 않는 것, 부지런할 것,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질 것, 음식을 먹을 사람에게 어떤 음식을 나눌지 재료를 판단하는 매의 눈을 갖는 것이 무형의 접시에 담긴 자신의 철학이다. 


맛있는 소리와 아름다운 색감까지


임 셰프의 요리는 그 자체가 예술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다”라는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요리로 만들어낸다. 4계절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자연을 재료로 마치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듯이 요리하는 임 셰프의 모습은 묘한 시각적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음식이 마음을 나누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임 셰프의 철학은 그의 요리가 주는 감동의 원천이 어디인지 명확히 인식시킨다. 그의 정성스러운 요리는 언어로 못다전하는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누군가를 위한 그의 상차림의 행위는 그 자체가 자신을 위한 위안이기도 하다. 


임 셰프는 “108접시가 어머니를 위한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라며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어머니에 대한 결핍과 그리움의 복합적 감정을 풀어냈음을 밝힌다. 

<밥정>은 어머니와 ‘밥’에 함축돼 있는, 그리고 그 감정을 인연을 맺는 모든 타인에게까지 확장해가는 한국적 ‘정’의 정서라는 익숙한 감성을 눌러담아 아름다운 한상을 차려냈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집밥’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며 대중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현상은 사랑으로 나누는 ‘밥’에 담긴 따뜻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현대인에게 강렬한 향수임을 의미한다. 이 영화는 바로 이 같은 현대인의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주고 다독인다.


임 셰프는 매 계절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뿜어내는 자연 속에서 다양한 식재료를 찾고, 길 위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을 위해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낙엽더미, 갯벌 덩어리, 이끼 등 상상도 못한 식재료에 새로운 맛을 입혀 자연의 밥상을 완성시킨다. 

 

 

영화에는 청각초밥, 갯벌 소스를 곁들인 백년초 무침, 솔방울 국수, 토란국, 두부 계란찜, 모과청 등 독특하거나 평범하고 익숙한 음식들이 다채롭게 등장해 미각을 자극한다. 소박하지만 풍성한 마음이 담긴 인간미 넘치는 요리 과정에서 맛있는 소리와 아름다운 색감까지 담아내며 오감을 만족시킨다. 


여기에 봄부터 겨울까지 산과 바다, 들판, 계곡 등 대한민국 사계절의 풍광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상미까지 더해져 영혼의 허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정춘옥 기자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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