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④ - 인왕산

2020.10.07 13:49:10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10월 3일)은 추석 연휴 사이에 낀 토요일이라 연휴의 나른함도 해소할 겸 가벼운 산행을 위해 인왕산과 안산 자락길로 정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한 친구의 코로나 집회에 대한 우려가 카톡에 회자 되어, 경복궁역 1번 출구 집합이 독립문역 3번 출구 집합으로 변경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철을 타고 가다 보니 개천절 집회에 대한 정부의 방침으로 경복궁역은 무정차 통과를 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역시나 그 친구의 우려대로 집합 장소를 변경하길 잘한 것 같다.

 

 

독립문역에서 출발한 우리는 사직동 성곽길을 따라 수성동 쪽으로 길을 잡는다.

도로 옆에는 금분을 입은 인왕산 호랑이상이 생뚱맞게 서 있다. 생뚱맞다는 생각을 들켰는지 지나가는 아저씨가 저 호랑이는 민화처럼 우스꽝스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섭지도 않아 마을 사람들이 모두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거든다. 그렇게 인왕산 호랑이는 담배 먹던 시절부터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었구나.

 

인왕산은 정선과 이병연의 한평생의 우정을 간직하고 있는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게 해 더욱 애착이 간다.

이병연이 금강산 입구의 고을 수령으로 있을 때, 정선이 금강산 그림을 그리는 편의를 봐주기도 하고, 노년의 정선이 지금의 강서구 양천 현감으로 있을 때, 이병연이 시를 보내면, 정선은 그림으로 답장하며 서로의 심정을 나눈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이병연이 병이 들자, 노년의 정선이 비 온 뒤의 꿋꿋한 인왕제색도를 그려 병문안을 가서 이병연도 인왕산처럼 꿋꿋이 버티기를 바랐다고 하지 않던가. 인왕제색도는 국보로 지정되어 리움 미술관에 있다.

 

특히, 정선과 이병연의 제자이기도 한 창암 박사해의 말에 의하면, “그림이 시가 아니라면 진짜 그림이 아니고, 시가 그림이 아니라면 좋은 시가 아니다.  또 그림만 그림인 줄 알고 시는 그림인 줄 모르면 그림을 잘 보는 것이 아니고, 시만 시인 줄 알고 그림이 시인 줄 모르면 참으로 시를 아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선과 이병연의 그림과 시의 교환을 하나의 예술로 평가하며 그 우정을 기리었다.

 

날씨는 화창하여 가볍게 트레킹 하는 기분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많고,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오르는 젊은 데이트족도 바라보면서 수성동 계곡 윗길을 지나 산성길을 따라가다 보니, 광화문 광장의 차벽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코로나 방역과 집회의 자유를 외치는 대립이 차벽으로 나타난 거다.

 

정치는 불만족한 타협이라는데 한쪽은 ‘재인산성’이라 하고 한쪽은 ‘방역의 벽’이라 하며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작금의 정치는 서로 상대를 향한 광기의 충돌로 보이며 타협하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듯 쓸쓸하다.

 

드디어 정상,

한 시간여 만에 오를 수 있는 인왕산의 경치는 역시 그만이다.

풍수지리에 재미를 붙인 한 친구는 강남의 지형을 설명하며 도곡동 땅은 풍수상의 길지일지는

모르지만 여성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세게 나온다며, 강남땅에 들어간 친구치고 엄처시하(嚴妻侍下) 아닌 사람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들며 사직동 방면 성곽길을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보이는 안산을 바라보면 그 옛날,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떠들썩했다는 광경이 생각난다.

 

친명을 내세운 인조는 북쪽 국경지대 방비를 위해 이괄을 평안도로 보낸다. 그러나, 이괄은 부원수고, 자신보다도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장만이 원수가 되어 이미 평양에 와 있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인조의 인사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한양으로 향한다. 이괄은 15일만에 한양으로 입성하고, 인조는 공주 공산성으로 피신, 이괄을 뒤쫓아온 장만이 밤을 도와 안산을 점령, 봉수대 횃불로 이상 없다며 이괄 군대를 안심시킨다.

 

다음날, 이를 안 이괄이 상대의 실력을 얕잡아보고 성내에 있는 관민들에게 "장만의 군대쯤은 단숨에 무찔러 보이겠노라, 싸움을 구경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성위에 올라서 구경하라" 큰소리를 치자, 성벽에 모인 사람이 어찌나 많았는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백로 떼 같았으며 이괄 군에 의해 옹립된 새 임금 흥안군도 언덕에 올라 구경하였다 한다.

 

결과는 초전에 유리한 이괄 군이 갑자기 바뀐 돌풍에 무너져 패퇴, 서대문으로 퇴각하였으나 서대문 근방 주민들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남대문으로 입성, 밤을 틈타 광희문으로 도망가다가 부하들에게 살해되어 난은 끝나고 만다.

 

약 400년 전의 광경이 눈에 그려지며, 이괄의 큰소리와 한양 사람들의 큰 구경거리가 오늘을 사는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인왕산과 안산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풍경이 그림이고 그림이 풍경인 것처럼, 그림 같은 풍경 속의 역사, 사랑, 우정 어린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면, 그 풍경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오주석 선생은 “흔히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行千里路 讀萬卷書(천 리의 먼 길을 다녀 보고 만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라 하는데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고 했듯이 인왕산을 감상하는 우리에게도 인왕산이 품은 사연을 좀 더 알면 더욱 친숙히 다가오리라.

 

안산 자락길에 접어들어 쉼터에서 쉬다가 오늘은 가벼운 산행으로 끝내기로 하며 영천시장으로 향한다. 석양에 물드는 인왕산이 오늘따라 더 정겹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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