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욱 산 이야기】 산에서 배우는 인생 ③ _ 북한산

2020.09.29 17:50:07

 

[시사뉴스 오병욱 칼럼니스트]  오늘은 자주 가는 북한산이다.


2시에 만나는 특수성과, 추분 이후 짧아지는 낮 길이도 고려하였지만, 초가을의 전형적인 화창함을 참을 수 없어, 조금은 더 북한산을 즐기고자 ‘짧은 시간의 긴 코스’로 정했다.

 

초기의 완만함도 즐기며 북한산이 주는 능선길 전경의 시원함도 느끼기에 안성맞춤인 홍제동 자락 길이다. 
오늘의 참가 인원은 늘 같이하는 친구들. 7~8명의 산행이다.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참여하는 열린 등산 모임이기를 바라지만, 바램과는 달리 보푸라기와 같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원이 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하며 기대해 본다.

 

오후 2시의 홍제역은 번잡하다. 전철역 앞에 오니, 오늘이 생일인 등산 모임의 회장은 벌써 옛날 통닭 3마리를 포장하며 산행의 기대를 부풀게 한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홍제 자락길로 이동을 시작한다.


일주일마다 거의 같은 얼굴이 만나지만 할 이야기는 왜 이리 많은지, 늙은 꼰대급 들이지만 재잘 조잘거리며 산길로 향한다. 마스크를 써야 하는 도시의 길을 벗어나 산길을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다. 파란 하늘에 어울리는 초록들의 몸짓, 한 달 전에 지난 이 길이면서도 또 다른 모습이 느껴지는 건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 항상 같은 일상이 아니고 새로운 신비로움이 날마다 피어오르는 것과도 같다. 


북한산 자락길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커피 한잔을 나눈다. 남으로 탁 트인 서울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에는, 그 앞에 보이는 백악산, 인왕산, 안산과 남산의 산행 추억들과 어우러져 오늘의 행복이란 맛으로 다가온다. 자락길 곳곳에 드문드문 보이는, 위해 식물인 미국 자리공의 번식이 눈에 거슬리지만 아직은 산행의 즐거움에 묻힌다.


다시 탕춘대 암문을 향하면서 북쪽으로 보이는 족두리봉에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중생대 쥬라기 시대의 암석으로 이루어졌다는 북한산 암반들은 거의 2억 만년의 역사로 흘러 왔을 것이고, 한반도의 역사를 만들며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온 지구의 역사이기도 하다.


탕춘대 탐방 센터를 지나면서 길은 내림과 오름을 반복하며 바위산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 준다. 길 언저리에는 헬기에서 공급한 돌과 나무자재들이 등산길 정비를 하려고 모여 있었다. 한때 한해 500만 명이 넘는 등산객 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는 북한산 길이 편해지면 더 많은 등산객이 몰려올 것 만 같다.


드디어 불광동의 족두리봉에서 향로봉을 지나 비봉과 문수봉으로 향하는 북한산 주 능선에 오르니 비봉이 눈앞에 보이고, 그 위로 비봉의 명물인 진흥왕 순수비가 보인다.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의 영토 확장으로 삼국 시대의 신라가 최대로 넓혀진 시대로 약 1500년 전의 비석인데, 후대에 잊히다 약 200년 전 추사 김정희의 금석문 연구로 진흥왕 순수비로 밝혀진, 사연이 있는 국보 제3호의 유서 깊은 비석이다.


매년 북한산을 오르면서도 10여 년 전에 2~3번 오른 적이 있는 비봉을 오늘은 호기탱천, 오르고 싶었다.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험하고 위험하여 일행 중 일부는 진흥왕 순수비 알현을 포기하고, 몇 명만이 올랐다. 나이 드니 안전을 먼저 고려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는 호연지기겠지만, 힘겹게 오른 나에게는 그 옛날의 왕이 이 험한 곳을 어떻게 올랐을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나이가 더 들면 못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고, 화창한 초가을 운 좋은 날에는 서해 바다의 반짝임도 보인다는 말도 실감 나게 들린다.


정상에서 보면 사실 우리 삶은 저렇게 작고,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볼 기회가 드문 세상이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새나 신에게는 우리가 그렇게 보일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낸 세상이란 무엇일까?


강준만 교수는 <인간 사색>이라는 책에서 “독선, 소신, 고집, 아집의 차이는 무엇일까. 없다. 모두 다 ‘신념’을 가리키는 단어일 뿐이다.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소신’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꼴통’의 광기로 보일 수 있다.”라고 세상의 관념에 대한 경계를 펼쳤다.


내가 세상을 안다고 떠들지 말고, 노자가 말한 대로 ‘爲學日益 爲道日損’(학문은 하루하루 쌓아가는 것이요, 도는 하루하루 버리는 것이다)의 자세로 애써 배운 학문은 덜어내고, 도 닦으며 하나씩 버리며 살아갈 순 없을까?


정상에 섰다는 기쁨으로 잠시 망상에도 젖어보지만, 처음 올라온 집사람은 “강남 고층 아파트에 안 올라가 봐도 하나도 안 부럽다, 그네들은 여기 올 일 없을 테니”라며 겁 없는 환갑 넘은 여인의 위엄(?)을 한껏 펼친다. 


가슴 뿌듯한 마음으로 발길도 가볍게 하산길을 재촉했으나, 산에서는 햇살도 빨리 떨어지는 것 같다. 서둘러 승가사를 지나 대남문으로 향하는 삼거리 쉼터에서 뒤늦은 산행 회장의 생일 축하연을 펼친다.


마음으로 믿는 한 가족 같은 친구들과의 산속 뒤풀이는 어스름한 때에 시작하여 어둑한 한밤까지 즐거운 농담과 밝은 미소로 이어지고, 아쉬움을 뒤로 한 체, 얼마 남지 않은 추석을 향한 밝은 달에 의지하여 나머지 산길을 재촉하여 내려오면서도 오늘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를 알현했다는 기쁨에 마음이 벅차다.


오늘 하루도 알찼다는 생각에 또 그렇게 하루가 간다.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병욱 칼럼니스트 oh0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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