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인문학] 영화 <명당>에 대한 술수사회학자의 비판

2018.10.08 09:32:53

'탐욕스러운 권력욕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
하늘의 뜻과 세속적 출세의 괴리는 '아이러니'


[시사뉴스 정승안 교수] 영화나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 지식인의 유희가 아니라면,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평가나 지적과 같은 다양한 의견들은 관객들에게는 오히려 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비평들은 그 안에 숨겨진 가치와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도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영화비평가인 크리스티앙 메츠(Christian Metz, 1931~1993)가 “우리는 모든 영화를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내리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작품으로서의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한 작업의 연장 선상에 비평이 자리 잡고 있다.


‘술수의 학문’의 확장


오늘날의 영화시장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자랑하는 고액의 ‘스타’ 연예인들과 왜곡된 시장구조로 인해 수많은 비정규직을 포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명당>의 영화제작자인 주피터필름 대표의 언급은 주목된다. “영화는 감독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라 출연하는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 촬영, 조명, 미술, 분장 등 각 분야를 책임 있게 수행하는 제작진과 전체 스태프, 투자자 등 모든 관계자들의 협업이자 공동 작품”이라는 감독의 시각은 의미 있는 태도라고 본다. 그는 또 수익금 중의 일부를 사회적 기업에 기부하는 등의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행보를 보여준 바 있다. 영화소비자들을 고려한 행보는 칭찬받을 만하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명당>은 이미 9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관상>과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궁합>에 이은 3부작이다. 음지에서 통용되던 강호의 학문이자 술수라고 폄훼되었던 주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배의 공고화를 위한 장치로써 조선의 ‘풍수’, ‘점복’, ‘예언’들을 연구하고 활용하면서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음흉한 귀신들의 논리를 통한 미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은밀하고 비밀스러웠던 영역들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과 흥미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술수의 학문이 일상생활에서의 상상력의 범위와 내용을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사실로서의 다양한 술수에 사회학자들이 주목하게 되는 이유이다.


디테일에 주목하기 시작한 관객


주피터필름은 <관상>을 시작으로 <궁합>, <명당>까지 3부작을 완성하였다. 900만 명의 관객이 찾았던 <관상>과 130만의 <궁합>을 뒤이어 개봉한 <명당>은 그 관객동원 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주변에서의 관람평을 들어보면, ‘조승우’나 ‘지성’ 특히 ‘백윤식’과 같은 배우들의 연기는 멋지도록 볼만하다고 평가한다. 젊은이들이 배우들의 연기와 같은 디테일한 측면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영화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에 반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명당’과 ‘풍수’를 의식하며 보시는 분들이 많다.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과 풍문으로 들어왔던 장면들이 연상되면서 장년층들에게는 무난하게 받아들여 지는 것 같다. 그런데도 전체적으로 젊은 층들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영화의 작품성과 예술성에 대한 평가와 대중적인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영화적인 장치와 스토리들은 나름대로 비슷한 구조를 지니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관상>과의 대비를 통해 <명당>을 이해하려고 한다. 주인공의 이미지와 역할이 모든 것을 이끌어가고 조연이 감칠맛을 어떻게 더하는가 하는 것이 보는 재미를 이끌어가는 핵심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술수의 학문은 ‘제왕의 학문’


이러한 훈련과 숙련의 과정을 배제한 채 등장하는 관상가, 풍수가는 전문가로서의 이미지를 ‘술수꾼’이거나 개인적인 능력으로 만들어버린다. 영화 <명당>에서도 당대의 술수의 학문들이 누구나 학문과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할 수 있었고 그 시대에서 공유되는 상식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놓침으로써 풍수가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지나치게 벌려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관상>과 <명당>은 스토리 진행구조와 플롯이 비슷한 흐름을 지니며 전개된다. 아마도 시사하고자 하는 핵심은 ‘탐욕스러운 권력욕’의 위험성에 대한 경계인 듯하다. 그러나 정작 술수의 학문은 ‘제왕의 학문’이자 통치의 기예였다. 권력의 전체 과정에서 풍수적인 요소를 별도로 떼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풍수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관객들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명당>이 대중적 설득력을 얻는 데도 실패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제도적인 권력투쟁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관상>을 기능적으로 활용하며 관객의 호응과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던 전작과 대비된다. 모든 종류의 ‘지나친’ 탐욕과 욕망은 위험하다. 그런데 하필 풍수나 관상과 같은 술수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까?


<명당>에서는 조선조 말의 세도정치를 비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남연군 묘>와 관련한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사실들이다. 분명한 사실은 흥선대원군이 정만리라는 풍수가에게 가야사라는 작은 암자에 제왕지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만냥이라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사람들을 피하게 한 후에 아무도 모르게 불태웠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사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거대한 사찰을 불태우는 장면은 최악의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풍수’에 대한 정당한 관심을 거대한 욕망의 희생물로 전락시키는 장치가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쉬운 장면이다. 묫자리 하나를 위해 거대한 사찰을 불태웠다면 이는 역사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명당을 빼앗고 차지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내용’을 부각시키면서 풍수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흥선대원군에게는 왕손으로서의 분명한 권력의지와 권력투쟁 과정에서의 지난한 노력들이 있었고, 정점에 해당하는 것이 풍수였다고 이해해야 한다. 차라리 영화적인 설정을 위해서라면 제왕지지(帝王之地)를 확보하고서도 남연군 묘소의 전면에 돌출된 큰 바위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와 같은 풍수적 상상력을 동원했다면 차라리 영화적인 장면이나 장치로서의 효과는 더 컸을 것이다. 그 바위가 며느리 자리에 위치한다. 명성황후 민 씨의 역할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天理의 아이러니


역사란 필연적인 흐름과 우연적인 사건이나 장면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흘러가기 마련이다. 오늘의 눈으로 과거를 단죄할 수는 없어야 한다. 역사적인 장면의 현재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연군 묘소 때문에 장손이 절손되었을까?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고종’과 ‘순종’ 사후의 왕실풍수를 배제하고 자행했던 풍수적 장치는 의미 없었을까? 모든 책임을 대원군에게 돌리는 것은 역사적 장면을 읽어내는 데 있어서 너무나 단편적이며 부당하다. 제왕이 나오기 위해 6대조의 조상의 흐름부터 읽어내는 <용비어천가>의 내용을 고려해보더라도 풍수적인 관점에서는 남연군묘 하나로 ‘제왕’이 되었으며 장손이 ‘절손’되었다는 결론은 정확한 사실이면서도 틀린 내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단일차원의 공식만으로 어떤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하늘의 뜻을 정당하게 읽어내는 데 실패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동시에 술수 풍수가들이 전유물로 만들며 개입하며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시점에서부터이다. 이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승안 교수 sovong@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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