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판은 여전히 거대한 두 개의 성벽으로 나뉘어 섰다. 저쪽 성벽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무조건 ‘악’이고, 우리 성벽 안의 침묵은 ‘선’으로 포장되는 진영논리의 늪.
그 견고한 여의도 성 안에서 정치권은 서로를 향해 혐오와 적대의 언어를 쏘아 올리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타협은 배신이 되고, 상생은 나약함으로 치부되는 작금의 현실 정치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핼시 톨러런스(Healthy Tolerance)’, 즉 ‘건강한 관용’이다. 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향해 립서비스로 참아주라는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닫힌 성문을 열고 차가운 현실의 바깥공기를 들이자는, 극한의 대결 정치를 살아가는 정치인들에게 던져진 강력한 책무이다.
“맹목의 늪, 진영논리의 비극에 빠진 여의도와 ‘검찰 보완수사’의 퇴장”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핵심은 ‘효율’이 아니라 ‘진영의 결집’이다. 복잡한 사법 체계와 민생 현안을 ‘우리 편’과 ‘저들 편’의 이분법으로 재단하면, 제도의 타당성을 따지는 사고의 과정은 생략되고 즉각적인 지지층의 응집력만 생긴다.
하지만 이 기형적인 정치적 효율은 치명적인 대가를 요구한다. 바로 ‘정치적 사유의 거세’다. 지나간 여름, 정치권을 거세게 흔들었던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 입법 정국은 이러한 비극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일례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제도의 전환이 목전에 와 있지만, 그 과정에서 사법 정의와 국민 권익 보호라는 본질적 목적보다는 ‘어느 진영의 권한을 축소하고 누구를 방어할 것인가’라는 정략적 셈법만이 공방을 채웠다.
여야가 잃어버린 것은 실수를 성찰할 기회이며, 국가 사법 시스템을 지탱할 정책적 엔진이었다. 국회는 입법의 전당이 아니라 상대를 섬멸하기 위한 투기장으로 전락했고, 제도는 바뀌었으나 진영 간의 골 깊은 상처는 여전히 여의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헬시 톨러런스’가 던지는 복선: 적대적 공존을 넘어선 협치”
‘헬시 톨러런스’는 무조건적인 양보나 회색지대에서의 기회주의를 뜻하지 않는다. 이는 ‘상대를 대화 가능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치적 태도’를 의미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민주적 겸손, 그리고 상대 진영의 대안 속에서도 일말의 타당성이 있을 수 있다는 신뢰가 결합된 형태다.
사법 개혁과 같은 거대한 국가 시스템을 다룰 때 여야가 보여주는 극한의 대치 국면은 상대를 공멸시키겠다는 위험한 도박과 같다. 그러나 건강한 관용은 상대를 ‘경쟁적 동반자’로 격상시킨다.
상대 당의 개혁안에 정치적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들이 제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합리적 비판을 수용하는 것. 그것은 상대의 정책적 고민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나은 국가적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는 고도의 전략적 신뢰다.
적대적 공존의 판을 깨지 않고는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는 없다.
“성숙한 공론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연습”
이 관용은 정치권에게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의 진영이 공격받을 때 지지층의 반발을 두려워하며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는 버릇을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가 실종된 정치는 고인 물처럼 썩어갈 수밖에 없으며, 헬시 톨러런스는 바로 그 고인 물 같은 여의도에 산소를 공급하는 유일한 작업이다.
정치인들은 이제 ‘우리 편’의 환호를 부르는 극단적 언어를 버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타협의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법안을 밀어붙이거나 필리버스터로 맞서는 데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주장 속에서 여야가 함께 나아갈 교집합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승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권을 향한 담대한 발걸음: 혐오의 시대를 끝내라”
결국, 헬시 톨러런스는 고갈된 정치적 자본을 채우는 길이다. 다름을 배제하고 내 안의 이념에만 갇히는 대신, 상대의 논리를 분석하고 국가의 미래라는 거대한 틀 속에 투영해 보는 지적 유연함이 정치 지도자들에게 필요하다.
우리네 정치는 너무 오랫동안 여의도의 좁은 성벽 안에서 안주했다. 이제는 그 진영의 담장을 조금씩 낮추어야 한다. 우리 진영의 신념을 확고히 하되, 다른 진영의 신념과 목소리가 국회 내에서 설 자리 또한 마련해 주는 것.
그 작은 여유와 타협의 미덕이 모여 우리 사회를 진정한 민주주의의 공론장으로 바꿀 것이다. 진영의 이름으로 혐오를 생산하고 국민을 갈라치던 시대의 막을 내릴 때다.
이제 정치권이 보여주어야 할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윽박지름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하며 함께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건강한 관용’이라는 이름의 용기다. 그 용기가 여의도의 새로운 질서가 될 때, 극한의 대결 정치라는 해묵은 굴레는 비로소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글쓴이=신중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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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국회 홍보기획관
국무총리 공보실장/대변인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