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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환경의 경계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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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영등포는 2026 예술기술도시기획전 ‘인류학 연습 : 인간은 우리인가?’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영등포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특성화사업으로 올해 4회째를 맞는 ‘예술기술도시’는 지난 4년간 영등포라는 도시를 예술과 기술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지역에서 발견한 변화와 질문을 창작자들의 연구와 작품으로 확장해온 사업이다. 영등포는 문래 기계금속 집적지를 비롯한 기술 산업 기반과 오래된 제조 생태계,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환경과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는 곳으로, 기술 발전이 도시와 사람의 삶, 감각과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2023년에는 ‘예술기술도시 어워드’를 통해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창작자를 발굴하고 융·복합 문화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이어 2024년에는 작품 공모와 창작 지원, 전시를 통해 예술기술 융복합 활동의 저변을 넓히며 지역 안에서 예술과 기술을 매개로 한 창작문화가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했다. 2025년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영등포의 장소와 산업, 사람과 환경을 창작의 주요 자원으로 바라보며 지역을 기반으로 작가 워크숍과 리서치, 예술기술 연구와 창작 과정을 고도화하고, 이를 영등포만의 문화적 정체성과 도시브랜드로 연결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축적을 바탕으로 2026년에는 작가 워크숍과 리서치, 창·제작, 전시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기술을 활용한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기술과 예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 자체를 보다 근본적으로 살펴본다. 특히 그동안 영등포의 도시성을 중심으로 이어온 탐구를 국내외 여러 지역에 기반을 둔 창작자들의 시선으로 확장해 영등포에서 발견되는 산업의 변화와 기술, 환경, 공동체의 문제가 다른 도시들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바라보며, 영등포를 세계 여러 도시가 공유하고 있는 동시대적 변화가 교차하는 장소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한다. 이는 기술의 발달로 사회 공동체의 삶 자체도 어느 한 지역, 도시로 머물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드러낸다.

이번 기획전 ‘인류학 연습 : 인간은 우리인가?’는 그 연장선에서 기술과 예술의 관계를 단순한 ‘융합’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넘어 기술·환경·사회를 둘러싼 조건의 변화 속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인간’과 ‘우리’의 경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자리다.

기획전의 제목 ‘인류학 연습 : 인간은 우리인가?’가 함의하듯 이번 전시는 ‘인간’을 이미 주어진 자명한 존재로 전제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에서 나아가 ‘인간은 우리인가?’로 압축되는 선문답과도 같은 질문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는 인간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우리가 ‘인간’과 ‘우리’를 구분하고 규정해온 기준 자체를 되묻는 질문이다. 전시는 인종, 젠더, 계급, 종(種)과 같은 경계뿐만 아니라 일상에 스며든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 등 새로운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되는 ‘나’와 ‘우리’의 범위를 다시 살펴본다. 참여자 각각의 문제의식을 통해 누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돼 왔으며, 어떤 존재들이 그 바깥으로 밀려났는지를 질문한다.

젊은 작가들의 시선에 비친 개발주의의 잔상과 이산의 경로, 집단적 이해와 오해, 노년과 퀴어, 모계 선조와 미래의 후손, 첨단 로봇과 노화된 기계의 노동, 도시 곳곳에 편재한 낙서와 비가시적 데이터 등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인간’과 ‘우리’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집요한 시선은 동시대 시각예술이 지속적으로 다뤄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여기에 새로운 기술과 물질 환경의 등장,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더해 이 문제를 확장한다. 이를 통해 인간을 세계의 중심적 주체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와 그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예술가를 단지 시각문화의 생산자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환경적·사회적 조건을 탐사하는 실천적 행위자, 즉 오늘날의 ‘인류학자(anthropologist)’로 바라본다. 전통적인 문화인류학이 낯선 타자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서 출발했다면 동시대의 예술가들은 탐사의 대상을 외부의 타자에 한정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공동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인공지능과 데이터, 환경과 행성적 조건을 가로질러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까지 탐사의 범위를 확장한다. ‘인류학 연습’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수사지만, 그 안에서는 작가마다 수행해온 실증적인 조사와 각자의 사변적 상상이 교차한다. 동시에 오늘날 문화인류학의 연구 의제가 인간을 넘어 기술과 사물, 환경과 비인간 존재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는 김재민이, 권희수, 조영각, 최가영, 반재하, 최고은, 주슬아, 장영해, 김시흔, 듀킴, 장종완, 최선이 참여한다. 작가들은 지난봄부터 이어진 연구 모임을 통해 각자의 삶과 환경에서 채집한 감각과 데이터, 서사와 기술적 매개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민족지(ethnography)’를 구축해 왔다.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해 기술과 환경,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감각과 인식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탐색한다. 걷기, 쫓아가기, 말하기, 듣기, 쓰기, 지우기와 같은 일상적 행위와 반복되는 노동은 세계와 자신, 그리고 경계 바깥의 존재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연구 방법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을 비롯한 다양한 기술과 제작 방식은 관찰하고 수집한 대상을 기록하고 해석하며, 이를 새로운 서사로 구성하는 매개로 활용된다.

이번 전시는 신작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작가들의 연구 노트와 9건의 신규 프로젝트, 3건의 초청 작업, 지역 내 청소년들과 함께한 바이오 워크숍 결과물 등으로 구성된다. 완성된 작품만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가들이 무엇을 관찰하고 수집하며 어떤 질문을 발전시켜 왔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총 6회의 사전 프로그램을 거쳐 전시의 문제의식을 함께 발전시켜 왔으며, 전시 기간에는 작가 간 크로스 토크 시리즈 등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전시가 던지는 질문을 확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관객 역시 단순한 감상자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작가들이 전개해 온 탐색과 질문 생성의 과정에 동참하며, 스스로의 삶과 세계를 다시 바라보는 ‘인류학 연습’을 수행하게 된다. 나와 타인, 인간과 비인간, 도시와 도시, 현재와 미래 사이의 경계를 오가며 ‘우리’라는 개념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되고 조정될 수 있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영등포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술의 효용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과 예술의 교차 속에서 우리의 삶과 도시가 어떻게 변화하고 관계 맺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장을 마련한다. 인간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로 규정하기보다 기술과 환경, 다양한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존재로 바라보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인간’과 ‘우리’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인류학 연습 : 인간은 우리인가?’는 9월 1일(화)부터 20일(일)까지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무료로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무다. 전시는 영등포구 종도빌딩 1층에서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anthroydp.site)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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