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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돈 칼럼

【신중돈 칼럼】 단어의 속살, 삶의 궤적 - 주거 정책의 대전환은 발상전환 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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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집을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물리적 건축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의 온기가 머물고, 좋은 기운과 여유가 깃들며, 삶의 복(福)과 덕(德)이 차곡차곡 쌓이는 보금자리로 여겼다.

 

이 땅의 동네마다 자리했던 ‘복덕방’이라는 이름 속에는 집을 구하는 일이 단순히 재산을 증식하는 투기적 행위가 아니라, 이웃의 사정을 서로 헤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맺어주며 따뜻한 덕담을 나누는 공동체의 거룩한 통과의례라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반면, 서양의 언어는 집과 땅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을 대변한다. 영어의 ‘Real Estate’는 직역하면 ‘진짜 재산, 혹은 진정한 토지(Real Asset)’라는 뜻이다. 여기서 ‘Estate’라는 단어는 중세 영주들이 소유하던 영지나 법적 신분적 권리에서 출발했다. 즉, 집이나 부동산을 따뜻한 보금자리나 인연의 장소라기보다는, 철저하게 계약과 법리에 의거해 소유하고 지켜내야 하는 '차가운 경제적 권리'이자 '객관적 물권'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미 넘치는 정서적 유대를 중시한 우리의 ‘복덕방’과, 철저한 법리와 시장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Real Estate’는 각자의 방식으로 주거의 가치를 규정해 왔다.

 

그러나 슬프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우리의 따뜻한 ‘복덕(福德)’도, 미국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시장 룰(Real Estate)’도 모두 상실한 채, 길을 잃은 거대한 괴물로 변해버렸다.

 

집을 통해 삶의 안정을 나누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공간은, 거듭된 정책의 실패와 아집 속에서 국민들에게 지독한 배신감과 박탈감만 안겨주는 ‘악덕방’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땀 흘려 저축한 이들의 정당한 노력과 상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거대한 벽이 되었다. 내 집 마련은 청년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평생을 짓누르는 무거운 형벌이 되었고, 서민들은 특히 일부 노년층은 한순간에 벼락거지로 내몰렸다.

 

특히 대한민국에 진보정권만 들어서면 어김없이 서울과 전국 부동산 시장은 통제 불능의 고공행진을 거듭해 왔다. 보수당 집권 시기와의 명백한 수치 비교가 말해주듯, 시장의 자율적 기능과 수요·공급의 경제학적 대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채 오로지 이념의 잣대로 난도질한 규제 만능주의와 땜질식 오답 노트가 부른 인질극이었다.

 

공급의 숨통을 조여놓고는 세금 폭탄을 던지면 시장이 백기 투항할 것이라는 오만방자한 확신은, 결국 영끌과 빚더미라는 사회적 재앙을 낳았다.

 

정책 실패의 증거는 너무나 명백하여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정권의 정치적 실험 도구로 전락한 부동산 시장 앞에서, 국민이 느끼는 분노는 이미 임계점을 한참 넘어섰다. 이제 주거 정책은 단순한 규제의 타령을 넘어, 기업의 사회 환원과 결부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기업들이 보유한 사유지와 유휴 부지에 단순한 영리 추구를 넘어, 임직원은 물론 지역 인근 주민들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풍부한 복덕이 갖추어진 주거·복지 시설을 함께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나아가 규제의 벽에 갇힌 한강변 수변 지구를 전향적으로 개발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용산 어린이 공원부지 대신 제시한 잠실 탄천변 개발, 그리고 건물의 옥상 공간마다 녹지 기능을 혁신적으로 재배치하는 조건부 건축허가 등 발상과 융합의 획기적인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주택 공급의 숨통을 확실히 틔워주어야만 집값 안정을 비로소 도모할 수 있다.

 

또한, 그간의 주거 정책은 심각한 사각지대를 방치해 왔다. 청년층과 신혼부부, 생애 최초 주택 마련 계층 뿐만 아니라 노년층에게도 주거정책의 손길이 미쳐야 한다.

 

집은 권력자의 입맛대로 주무르는 실험 대상이 아니다. 정책의 실패를 통렬히 시인하지 않고, 시장의 이치를 외면하는 오만이 계속되는 한 국민의 신뢰는 영원히 회복될 수 없다.

 

주거의 안정을 유린해 온 지난 과오를 통계적 팩트에 비추어 철저히 반성하고, 공급의 혁신과 세대별 맞춤형 정의를 바로 세우는 근본적인 대전환만이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달래고 무너진 터전을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이다.

 

글쓴이=신중돈 칼럼니스트

 

<편집자 주 :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국회 홍보기획관
국무총리 공보실장/대변인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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