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의 채용 지도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신입사원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면 가히 ‘채용 대격변’이라 부를 만하다. SK하이닉스는 학력과 연령 제한은 물론 기존 자기소개서마저 폐지하고, PC와 대규모언어모델(LLM)을 활용해 장시간 직무 과제를 해결하는 ‘반나절 심층면접’을 도입했다. KT, 넥슨, NC 등은 단순 코딩테스트나 정량적 스펙 대신 AI 리터러시와 업무 현장에서의 AI 해결 역량을 핵심 평가 잣대로 삼기 시작했다. 이제 기업은 “AI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AI를 도구 삼아 현업의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능숙하게 풀어내는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기업 현장의 전광석화 같은 AI 전환(AX) 속도에 비하면, 우리 교육 현장은 여전히 거북이 걸음이거나 때로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지난 2025년 한 대학 시험장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한 학생을 부정행위자로 규정해 0점 처리한 사건은 교육계가 맞닥뜨린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문명적 도구를 손에 쥐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곧 실무 핵심 역량이 되는 시대에, 시험장에서 AI를 썼다고 낙인을 찍는 것은 마치 정밀 계산기나 컴퓨터가 나온 시대에 “붓과 먹으로 필기하지 않았다”며 감점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AI를 잘 활용해 더 깊고 통찰력 있는 정답을 찾아낸 학생을 처벌할 것인가, 아니면 그 활용 능력을 기특하게 여겨 더 높은 차원의 문제를 제시할 것인가? 교육이 어느 방향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국가 인재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온 필자 역시 깊은 고민과 당혹감을 피할 수 없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교수자의 일방적 강의를 줄이고 토론과 문제 해결 중심으로 진행하는 ‘플립러닝(Flipped Learning)’을 도입해 운영해 왔지만, AI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는 이마저도 주도권을 흔들어 놓았다. 교수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지식은 생성형 AI에게 물어보면 단 5초 만에 교수자의 설명보다 훨씬 상세하고 체계적이며 알기 쉽게 정리되어 돌아온다. AI 프롬프트 활용 능력이 뛰어난 수강자는 이미 특정 분야에서 교수자의 단편적 지식 보유량을 뛰어넘는 현실이다.
이처럼 지식의 독점권이 완전히 해체된 시대에 기존의 하향식(Top-down) 지식 전달 교육은 그 수명을 다했다. 강의실에 앉아 교수의 말을 노트에 적고 외우는 방식으로는 AI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단 한 명도 키워낼 수 없다. 초·중등교육은 물론, 고등교육의 패러다임이 ‘지식의 축적’에서 ‘질문의 구성과 문제 해결력’으로 전면 재편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I 시대의 교육은 첫째, AI를 배척 대상이 아닌 ‘디폴트 도구(Default Tool)’로 승인해야 한다. 학습 과제와 평가 방식 전체가 AI 활용을 전제로 완전히 재설계되어야 한다. 단순 요약이나 기본 개념 정리는 이미 AI의 몫이다. 교실과 강단에서는 AI가 생성한 답안의 오류를 검증하는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AI의 한계를 파악하고 정확한 맥락을 입력하는 ‘프롬프트 구성력’, 그리고 여러 AI 출력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재구성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둘째, ‘답을 주는 교육’에서 ‘질문을 던지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좋은 질문이 좋은 답을 만든다. AI 도구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내는 힘은 정교한 문제 의식에서 나온다. 초·중등 단계에서부터 표준화된 정답을 찾는 연습을 중단하고, 현상에 대해 의문을 품고 스스로 가설을 세우며 AI와 대화하며 이를 검증해 나가는 탐구형 프로젝트 수업이 뿌리내려야 한다.
셋째, 대학과 산업 현장 간의 완벽한 밀착과 산학 협력의 고도화다. 최근 SK텔레콤과 서울대가 공동 과정을 개설해 풀스택 AI 사업과 연계된 실제 모델링과 앱 개발을 가르치는 사례처럼, 대학 교육은 강의실 안의 이론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AI 시대를 살아갈 인재는 AI와 경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AI를 가장 자유자재로 다루며 인간 고유의 직관과 통찰로 가치를 더하는 인간이다. 지식을 암기하고 부정행위를 감시하는 데 몰두하는 고지식한 교육 방식은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AI를 당당히 거장의 도구로 인정하고, 그 위에서 마음껏 문제 해결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 초·중·고와 대학 교육에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다.
글쓴이=시사뉴스 박성태 대기자

배재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졸업 행정학 박사
전 파이낸셜뉴스 편집국 국장
전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발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