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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만 칼럼

정치는 국민을 갈라놓고, 국가는 신뢰를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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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내 편의 정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시사뉴스 이용만 논설위원 칼럼]

대한민국 정치가 또다시 갈림길에 서 있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고, 여야가 뒤바뀌면 같은 사안을 바라보는 기준마저 달라진다. 어제는 정의였던 것이 오늘은 불의가 되고, 어제의 적폐가 오늘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국민이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원칙과 기준은 살아 있는가.”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회도, 정부도, 사법기관도 결국 국민의 세금과 권한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오늘의 정치 현실을 바라보면 국민을 위한 경쟁보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한 정치가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여야는 서로를 향해 ‘독재’와 ‘내란’, ‘검찰공화국’과 ‘정치보복’을 외친다. 수사와 재판은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되고, 국회는 민생보다 정쟁에 매몰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정치가 계속된다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국민의 신뢰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수많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았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을 지켜봤다.

 

특히 법과 제도를 바라보는 이중적 태도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

내 편이 잘못하면 ‘정치적 탄압’이고 상대편이 잘못하면 ‘엄정한 법 집행’이라고 주장한다면 법치는 설 자리가 없다.

 

법은 누구에게나 같아야 한다.

대통령에게도, 국회의원에게도, 장관에게도, 판사와 검사에게도, 재벌에게도, 평범한 시민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출발점이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이제 ‘누가 더 상대방을 많이 공격했느냐’의 경쟁을 멈춰야 한다.

국민의 삶은 정치권의 말싸움만큼 한가하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는 여전히 부담스럽고, 청년들은 일자리와 주거 문제로 고민한다.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버티고 있고, 지방의 중소도시는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를 걱정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교육비와 주거비를 걱정하고, 노년층은 앞으로의 삶을 걱정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고, 법과 제도가 공정하게 작동하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에서 멀어질수록 극단적인 정치가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 진영을 악으로 규정하고, 사실관계가 확인되기도 전에 누군가를 범죄자로 단정하며,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믿는 사회가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분열이 정치권을 넘어 국민에게까지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와 가족이 정치적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등을 돌리고, 인터넷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혐오와 조롱이 넘쳐난다.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의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의 나라다.

보수의 가치에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진보의 가치에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 있다. 자유와 시장경제가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 역시 국가의 책무다. 안보가 중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역시 소중하다.

문제는 진영이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잃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정치’가 아니다.

 

더 책임 있는 정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고, 수사와 감사가 자신에게 향한다고 해서 무조건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반대로 수사기관 역시 권력의 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증거와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사법부 역시 정치적 압력이나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입법기관이 정쟁의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회라면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역시 정치권의 주장만 믿어서는 안 된다.

누가 말했느냐보다 무엇이 사실이냐를 봐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못했을 때도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반대하는 정치인이 옳은 일을 했을 때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만 민주주의가 아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도 법과 절차에 따라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의혹이 있다면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선거든, 수사든, 행정이든, 국정운영이든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사실을 밝혀야 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국민을 무조건 음모론자로 몰아서도 안 되고, 반대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확산해서도 안 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의혹이 있다면 조사하고,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고, 사실이 아니라면 국민 앞에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정치권이 국민에게 요구할 것은 인내가 아니라 신뢰를 회복할 행동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경제만큼이나 신뢰의 위기를 걱정해야 한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하고, 국회를 믿지 못하고, 사법기관을 믿지 못하고, 선거제도를 믿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국가의 가장 강력한 자산은 무기나 돈이 아니다.

 

국민이 국가를 믿는다는 사실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남겨야 할 것은 상대방을 쓰러뜨린 기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제도를 한 단계 더 건강하게 만든 기록이어야 한다.

 

이제는 정치가 국민에게 싸움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권에 상식을 가르쳐야 할 때다.

보수냐 진보냐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이고, 여당이냐 야당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정당도 바뀔 수 있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언젠가는 임기를 마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정치권에 묻는다.

 

당신들이 지키려는 것은 정권인가, 정당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인가.

국민이 원하는 답은 분명하다.

정치인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여야 한다.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승리여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갈라놓는 순간 민주주의는 병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는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오래 갈 수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마지막으로 돌아봐야 할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권력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

그 답을 국민은 이미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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