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하정수 기자] 1981년, 당시 13살이던 소년 박관식 씨는 담임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장학생이나 학생회장들만 특별히 선정돼 가는 곳이니 감사한 마음으로 다녀오라"는 다정한 권유였다.
말도 타고 활도 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수련원이라는 말에 박 씨는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버스가 도착한 경주 화랑교육원의 문이 열리는 순간, 소년을 맞이한 것은 푸른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무자비한 폭언과 몽둥이질이었다.
전두환 군부 정권이 자행한 이른바 "중고생 삼청교육대(학생 순화교육)"의 비극이 45년 만에 세상에 폭로됐다, 최근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PD수첩을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전국 4,701명의 청소년을 강제 동원해 인권을 짓밟은 잔혹한 국가폭력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 맞으려고..." 13살 소년 잔혹하게 짓밟은 공권력
박관식 씨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소년들은 학교별로 할당된 인원에 맞추어 '뒷탈이 없을 만한' 취약계층이나 영문도 모르는 모범생 위주로 무작위 선발됐다. 도착지인 수련원은 이름만 수련원일 뿐, 실상은 80년대 악명 높던 삼청교육대의 축소판이었다.
소년들은 열흘 동안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오전 6시 기상나팔을 시작으로 유격, 제식, 공수 훈련 등 감당하기 힘든 특수훈련을 강요받았다. 하루 8시간 넘게 이어지는 혹독한 얼차려와 상습적인 구타가 반복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미성년자를 향한 성폭력까지 자행됐다는 점이다. 당시 겨우 13살이었던 박 씨는 군인 소대장으로부터 구강성교를 강요받는 끔찍한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 박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저 안 맞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눈물을 흘려 보는 이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고 고통을 이기지 못해 현장에서 자해를 시도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발설하면 죽인다" 교사의 외면과 평생의 낙인
지옥 같은 열흘이 지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군인들은 소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이곳에서의 일을 절대 밖으로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했다.
두려움에 떨던 박 씨는 대구의 학교로 돌아온 직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왜 자신을 그곳에 보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외면이었다. 학교와 사회는 피해 학생들을 '문제아', '불량 청소년'으로 낙인찍었고, 친구들로부터도 철저히 격리됐다.
국가폭력이 남긴 상처는 개인의 삶을 완전히 송두리째 파괴했다. 올해로 장년에 접어든 박 씨는 45년이 지난 지금도 환청과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고 있으며,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4,701명의 잊혀진 소년들... "국가가 책임지고 치유해야"
역사학계와 인권 전문가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삼청교육대의 잔혹성은 널리 알려졌으나, 중고생 등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조직적인 순화교육과 인권유린이 있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은폐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최근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집단 수용 시설 및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인권 유린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직권 조사와 국가 배상 원칙을 확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박 씨를 비롯한 '잊혀진 소년들'의 명예 회복과 실질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피해자 개인의 제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당시 대구시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이 소년들을 군부대에 팔아넘긴 경위를 명명백백히 밝히는 전수조사가 즉각 착수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