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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사람】 자유무역의 반작용 그리고 트럼프 시대의 개막 <세계화는 어떻게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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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세계화’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화’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블룸버그, 워싱턴포스트 등에서 30년 넘게 세계 경제를 취재해 온 베테랑 언론인 데이비드 J. 린치의 신작. 지난 25년간 전 세계를 지배했던 ‘초세계화(hyper-globalization)’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어떻게 실패한 도박으로 끝났는지를 냉철하게 파헤쳤다.

 

환상 뒤에 가려진 균열과 위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를 알리는 ‘역사의 종언’으로 선언됐다.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과 서구 엘리트들은 무역 개방과 자유 시장이 전 세계에 끝없는 민주주의와 평화, 그리고 부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속에서 이른바 ‘거대한 도박’에 나섰다.

 

1993년과 1994년에 걸쳐 미국 의회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우루과이라운드를 연이어 승인하면서 무제한적인 자유무역의 기조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렸고,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과 상품의 이동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초세계화의 낙관론은 1990년대 중반 다자 기구의 출범과 강대국들의 통합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화려한 약속 이면에서는 맹목적인 자본 이동의 부작용과 개방의 혜택에서 철저히 소외된 노동자들의 억눌린 분노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균열의 결정타는 2001년 12월 중국의 WTO 가입과 함께 찾아왔다.

 

서구 엘리트들은 중국을 자유 무역 체제에 편입시키면 부유해진 대중의 열망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서구의 기술과 자본을 흡수하며 독재 체제와 국가자본주의를 더욱 강화했다. 넉넉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값싼 중국산 제품이 미국 시장을 덮치면서 중서부 공업 지대를 중심으로 240만 개 이상의 제조업 일자리가 증발하는 거대한 ‘차이나 쇼크’가 발생했다.

 

부메랑이 된 분노와 세계화의 몰락

 

방치된 패자들의 누적된 분노와 경제적 불안정성은 마침내 임계점을 넘으며 기존의 정치·경제 질서를 산산조각 내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 주택 시장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고, 구제금융의 혜택이 위기를 자초한 금융 엘리트들에게만 집중되는 것을 지켜본 대중의 불신은 중산층 붕괴와 맞물려 극에 달했다.

 

무역으로 일자리를 잃고 소외됐다고 믿는 유권자들의 응어리진 분노는 결국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라는 역사적 지각변동으로 폭발하며, 보호무역주의와 극단주의(MAGA)를 시대의 주류로 끌어올렸다.

 

백악관에 입성한 트럼프는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초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거칠게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취임 직후 거대 무역협정인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전격 파기하며 미국의 전통적인 무역 질서 지위를 스스로 내던졌다.

 

나아가 2018년부터는 중국산 수입품 전반에 대규모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며 양국 간 전면적인 무역 전쟁에 불을 뿜었다. 한때 공동의 번영을 창출할 것으로 굳게 믿어졌던 국가 간 무역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짓누르는 제로섬 게임이자 지정학적 무기로 완전히 전락하고 말았다.

 

세계화의 후퇴는 팬데믹과 지정학적 위기를 거치며 바야흐로 ‘경제민족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굳어졌다.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오직 비용 절감만을 추구하던 ‘적시 생산(just-intime)’기반의 글로벌 공급망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며 무분별한 해외 의존이 부른 뼈아픈 민낯을 세계에 드러냈다.

 

뒤이어 2022년 2월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지정학적 평온의 시대가 영원히 끝났음을 각인시켰고,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 등 경제계 거물들조차 앞다투어 ‘세계화의 종말’을 공식적으로 고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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