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뜨거운 축제, 월드컵이 열리면 경기장의 함성만큼이나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 향연이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도미노 피자 등등...이들은 화려한 신기술이나 파격적인 변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반세기 전과 다름없는 클래식한 맛을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반복적으로 각인시킬 뿐이다.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판치는 시대, 이 ‘음식료 제국’들의 일관성은 경이로운 생존의 기록이자 신뢰의 증거다.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이들을 찾는 이유는 그 맛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서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정확히 구현될 것이라는 ‘변함없음’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빅맥 세트 하나를 주문하는 행위는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자신이 신뢰하는 가치를 보장받는 대가다.
이 지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이토록 견고한 ‘맛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가. 정치의 ‘맛’은 왜 보존되지 못할까?
한국 정치에서 여야 교체는 자연스러운 민주주의의 생리다. 그러나 뼈아픈 것은 정당의 정강과 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현실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구호는 실종되고, 상대의 붕괴만을 노리는 극단적 정쟁의 전술만이 난무한다. 정당이 브랜드가 되지 못하고, 정치인이 ‘스테디셀러’로 남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맥도날드가 엄격한 공정으로 맛을 지키듯, 정당 또한 지향하는 가치의 ‘레시피’를 목숨처럼 고수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지지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선거철마다 간판을 바꾸고, 어제의 정책을 내일의 쓰레기통에 처박는 모습은 ‘맛없는 식당’의 전형이다. 오늘 먹은 정치가 내일은 부패해져서 나오니 국민이 어찌 정치라는 브랜드를 신뢰하겠는가. 정치가 부패한 식재료를 내놓는 동안 국민은 정치 혐오라는 식중독을 앓고 있다.
국민은 뇌리에 남는 ‘정치적 철학’을 원한다. 우리가 은퇴한 정치인을 회상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가 펼쳤던 ‘정책의 향기’가 하나의 브랜드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정치인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즐기지만 국민의 삶에 깊은 맛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일회용 마케팅’이 태반이다.
진정한 정치는 1회성 쇼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일관된 정체성이다. 정치인의 가치가 당의 정강으로 계승되고 국민의 일상에 스며들 때 정치는 비로소 ‘신뢰’의 궤도에 진입한다. 국가적 선택의 순간에 “그 정치인의 철학이라면 믿을 수 있지”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지금처럼 사욕을 위해 철학을 버리고, 당리당략을 위해 신념을 배신하는 ‘불량 정치’는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신뢰’라는 이름의 지속가능한 정치를 기대한다. 정치인도 정당도 사라지지만, 그들이 남긴 정치는 다음 세대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스스로 ‘지속가능한 가치’에 집중하자. 당이 바뀌어도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국가적 비전이라는 ‘고유한 레시피’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정권 교체 때마다 이전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리셋하는 정치는, 국민이라는 소비자를 시장에서 내쫓는 자해 행위이자 미래를 향한 배신이다.
국민은 수백억 수천억 원의 선거 비용에 무임승차한 채 뱉어내는 뻔한 말장난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가치의 맛을 보고 싶어 한다.
정치인은 떠나도 그들이 만들어낸 ‘프레시한 정치관’이 전통으로 계승되는 풍경, 그것이 우리가 정치를 통해 이루어야 할 ‘지속가능한 행복’의 본질이다. 일관된 가치가 정치를 지배할 때 비로소 국민은 정치를 신뢰의 대상으로 식탁 위에 올릴 것이다.
더 이상 정치가 ‘불량 식품’으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이제 정치는 국민의 식탁 위에서 상하지 않는, 가장 정직하고 변함없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정치가 존재해야 할 유일한 이유다.
글쓴이=신중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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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
중앙일보 샌프란시스코 지사장
국회 홍보기획관
국무총리 공보실장/대변인역임











